“무대는 내가 살아있는 이유” 이상범 연극인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09/05/18 [11:1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09/05/18 [11:15]
“무대는 내가 살아있는 이유” 이상범 연극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 주간시흥
편한 길을 두고 굳이 척박하고 어려운 길을 개척해 가는 사람을 만나면 우린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냐고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그 길이야말로 최선의 길이며, 꿈을 이루어 나가는 소중한 길일지도 모른다.

▣ 매일 기적 같은 삶의 연속
연극인으로 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대 위의 화려한 순간은 너무나 짧고,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범(‘기린’ 대표)씨는 2002년 4월 처음 극단을 창단하고 극단창단공연으로『하녀들』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까지만 해도 “그래! 해 보자”하는 의욕에 차 있었다. 열심히 해서 지역문화운동도 겸하자고 나름 다부진 각오를 하던 그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연극은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었다. 일찍 와서 준비하고, 분장까지 마친 상태로 무대 뒤에서 스텐바이 하고 있다가 다시 분장을 지우고 씁쓸하게 돌아가던 날이 부지기수였다. 3주 이상 공연 중 3일 동안은 관객이 없어서 공연을 못한 적도 있단다. 그런 날은 스스로에게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는 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연극은 관객과의 만남으로 완성되어진다. 관객이 없음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단다. 지금까지도 그런 어려움은 항상 뒤따르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는 이미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수없이 해온 연극인이었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극단을 유지하면서 공연한다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겐 기적 같은 일이란다.
 
▣ 척박한 길 위에 서다
그는 시흥사람이다. 매화동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기까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공부를 위해 잠시 떠나있던 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이곳에 터를 잡고 있으니 시흥 토박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처음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7년쯤이다. 목회자의 길을 가고자 신학대학을 다니던 때 우연히 학교에서 하는 연극을 보고 매료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연극과의 인연이 되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는 연극을 향한 자신의 열정이 주체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본격적인 연극수업에 몸을 맡긴다. 서울예대 극작과와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과 석사과정을 마치는 동안 그는 미친 듯이 연극에 몰두하며 살았다. 아무것도 거칠 것도 두려움도 없던 시절이었다.

연극을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삶의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꼈다. 그의 연극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92년 겨울, 극단 ‘연우무대’를 시작으로 2002년 극단‘기린’을 창단하기까지의 8년은 앞만 보고 부지런히 달려오던 때였다. 극단을 설립하고 신천동에 작은 연습실을 차리면서 그는 열심히만 하면 멋진 미래가 곧 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소 낭만적인 생각에 젖어 나름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한다는 명목도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제적인 어려움은 커져만 가고,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질수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어 기도하는 일이 늘어만 갔다.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루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지만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었다.
 
▣ 배우란 풀무불 같은 존재 
처음 단원을 모집할 당시 서류심사를 통과한 지원자들에게 지방이라고 하면, 거리가 멀어서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외적인 명성을 떠나서 지역적인 점, 즉 지방이라는 부담이 단원을 모집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현재 극단‘기린’의 정식단원은 7명인데 그중 창단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단원이 2명이나 된다.

또한 그는 말한다. “배우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라고.

공연이 잡히기 전까지 단원들은 자체 역량강화를 위해 강사초빙 교육과 실험적인 작품 모색을 통해 함께 호흡을 맞추며 조화를 이뤄나간다. 때론 혹독하게 힘든 훈련이 이어지지만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단다. 그야말로 지방이라 주목받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지금껏 이어온 힘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단원들에게는 연극하고자하는 정신으로 같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는 믿음직스럽지만 한편으론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뜨겁게 만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뜨겁게 할 수 없기에 날마다 끊임없이 자신을 향한 풀무질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며 “더디더라도 승부를 걸어보고 싶다. 그래서 기적 같은 연극인생을 살고 싶다”는 그의 포부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 새로운 비전을 품으며
극단‘기린’은 시흥시의 몇 안 되는 극단 중에  유일하게 대학으로부터 전용극장을 사용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산업기술대로부터 300석 규모의 KPU 아트센터와 연습실을 협찬 받는 한편, 경기문화재단과 시흥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공연하기도 한 주목받는 극단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2006년부터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천사’라는 후원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천사’란 매달 1만원의 후원금을 내고 공연티켓으로 받는데 말하자면  공연준비가 잘 되도록 미리 표를 사주는 개념이다. 처음 이런 후원제도를 이끌어낸 분은 ‘신천동 연합병원’의 김창수 원장이란다.

힘들 때 단비처럼 극단을 지탱해주는 문화천사들이 늘어 지금은 고정적인 후원자가 40여명이나 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극단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문화예술운동이 발전해서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시민극단’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지방이라는 개념을 떠나 또 하나의 예술의 중심으로 시흥시가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인데, 어떻게 하면 이곳 시흥을 예술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시민과 함께 풀어나갔으면 한단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연극철학 없이 연극을 하려 하지 말자”고, 연극이란 결과보다는 과정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이기에 “모두에게 열려있으면서 모두에게 냉혹하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때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연극과 문예창작을 가르치기도 하고,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그에게 극단‘기린’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될 듯 했다. “연극의 명대사는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있다”는 자신만의 연극철학을 말하는 그의 눈 속에 아름다운 ‘문화예술도시’ 시흥이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시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