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라는 눈부신 경력을 소유하고 퇴직 없는 일선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운전자 김길선(55세)씨.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섬세하고 꼼꼼한 면으로 무사고를 기록한 베스트드라이버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2.4톤 개별화물차 운전기사를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는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 한때 남자들도 하기 힘든 물류 일을 척척해낸 억척스런 김씨는 사실 어느 여성 못지않게 섬세하고 얌전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주)농심을 다니다가 사내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이것저것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어서 한때는 여성속옷을 만드는 곳에서 바느질을 하던 그다. 힘든 작업을 해내느라 아침출근이 늦어져 간혹 택시를 타야했던 그는 당시 운전기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도로를 달리는 운전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는 여성화물기사가 드문 물류시장에 1991년 뛰어들었다. 젊고 예쁜 아줌마 기사가 입사했으니 회사에선 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무겁고 힘든 자재들은 대부분 남성기사들이 알아서 차에 실어주어 그다지 어려움 없이 일을 해냈다. 젊기도 해서 힘든 줄도 몰랐던 시절이기도 했다.
1997년 IMF의 여파로 화물운송은 커다란 고비를 맞았다. 살던 집도 팔고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어려움을 견뎠다. 잠시의 공백이었지만 길게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데 있었다고 회상한다. 2년의 공백을 깨고 그는 다시 (주)인지콘트롤스에 입사했다. 자동차 부품을 주로 취급하는 이곳에서 그는 여전히 빛났다. 전국망의 거래처에 가면 모두들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성들이 하지 않는 일을 노련하게 잘 해내는 그녀를 모두 대단하게 생각했다.
만 9년 동안, 그녀는 화물운송업계에서 일 잘하는 이로 정평이 났다. 처음 개별화물차를 몰던 때 중학생이던 자녀는 어느새 커서 결혼까지 했다. 이제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여자나이 50이 넘어서자 힘이 부쳐 장거리 운행이 부담스러워졌다. 끝내 운전대만은 놓을 수 없었던 그녀는 고민 끝에 개인택시운전으로 전환했다.
요즘 그녀의 차를 타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엄마 같아서 편안하고 좋다는 젊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동년배의 여성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남성고객들은 아줌마 운전기사를 만났으니 “오늘 복권사야겠다”는 말을 많이 한단다. 트럭을 운전할 때와는 사뭇 다른 재미가 택시운전에 있다고 한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은 약점이기보다는 장점일 때가 더 많다. 여성기사라서 같은 여성 고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운전기사로 기억에 남는다.
때로 술 취한 손님이 돌아서간다는 억지를 부릴 때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운전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다. 웬만하면 밤늦게 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힘들 땐 가끔 쉬기도 한다. “지금 내 나이에 어디 가서 일 하겠어요 제게 택시운전은 최상의 직업이랍니다”
며칠씩 개인 사정으로 쉬다가도 운전대만 잡으면 생활의 활력이 생긴다는 그는 천상 드라이버인생이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라서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진 세대가 되었어요. 여성이기에 더욱 섬세하게 일할 수 있는 점이 경쟁력이 되고 있지요” 정년도 없으니 힘닿는데 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 대한민국의 멋진 아줌마 기사님이다.
박경빈 기자 thejugan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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