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2)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10/25 [23:41]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10/25 [23:41]
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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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장 김용일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전쟁이고 미국인에게는 강 건너 불 이어서 미국은 애초 이 전쟁에 끼어들 꿈도 꾸지 않은 중립이었다. 그러나 말만 중립이었지 미국인들의 마음은 이미 영국이나 프랑스편으로 크게 기울고 있었던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영국인들이 건너와 그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였고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가 도와주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중립을 지켰지만 막대한 군수물자가 영국과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이는 즉각 거대한 액수의 달러로 돌아와 미국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었다.

전쟁이 격렬해질수록 미국에서 영국과 프랑스로의 수출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늘어갔고 그 대가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오는 돈은 미국 경기를 최대로 상승시켜 임금과 물가가 오르고 주식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사치품이 거리에 넘쳐나 전쟁특수 호경기에 미국은 계속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영국과 프랑스와 한편이 되었던 덕에 전쟁을 치르느라 도이치 제국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아시아의 점령지를 일본이 차지하고 전쟁 물자를 수출하여 벼락부자가 되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도이치 제국은 잠수함을 동원하여 영국해안을 봉쇄하고 영국 접근 선박에 무제한 공격을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은 “미국 선박이 공격을 받으면 그냥두지 않겠다고 했다.”

1915년 5월 루시타니아호가 도이치 잠수함 공격으로 침몰되어 124명의 미국인 승객이 목숨을 잃으면서 미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졌으나 윌슨 대통령은 또다시 경고로만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1917년 2월 ‘치어만 전보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도이치 외무장관 치어만이 멕시코 외무장관에게 보낸 암호편지가 연합군에 압수되어 해독된 일이었다. 그 내용은 “미국이 우리와 전쟁을 시작할 경우 멕시코가 우리를 도우면 1848년 멕시코가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1848년 빼앗긴 영토라면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등 미국 전체 영토의 3분의 1이나 되는 방대한 영토로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판에 또다시 3척의 미국배가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여론에 떠밀린 윌슨 대통령은 재선 취임 직후인 1917년 4월 2일 미국의 참전을 선언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미국의 정규군은 고작 22만 명에 주방위군 45만 명밖에 되지 않아 징병제를 실시하여 1차 대전 중 200만 명 규모의 군사를 파병했고 11만 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군은 육해군을 합쳐 500만 명의 규모로 성장해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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