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생 44년, 연꽃위에 수놓은 김종환 작가

“사진은 가장 객관적인 순간의 증거다”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2/03/19 [13:10]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2/03/19 [13:10]
사진인생 44년, 연꽃위에 수놓은 김종환 작가
“사진은 가장 객관적인 순간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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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종 환 사진작가  © 주간시흥

 
지난 2007년 6월 4일. 소금창고가 헐리던 날 한 편에 서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었다.
 
사진작가 김종환(金鐘煥.68) 그에게 소금창고는 기력이 쇠진하여 누워만 있던 어머니의 말년 모습처럼 정겹고, 포근하고, 따스했다. 또한 어머니처럼 언제나 넉넉한 가슴으로 보듬어주던 마음의 안식처였다.

90년대 처음 소금창고를 알고 나서 부터는 매일같이 찾아와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아예 갯골 근처로 이사까지 왔던 그는 소금창고를 보면서 남은 생을 보낼 작정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그의 일상이 되었던 소금창고. 한 시대를 풍미하다 세월의 요동에 무너지고 삭아 가던 소금창고는 어쩌면 그 무렵의 그에겐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소금창고가 처참히 포크레인에 맥없이 스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마치 어머니의 죽음마냥 허망함을 느꼈다.
“그날 밤 날이 새도록 부숴 진 잔해 옆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더 자주 그 모습을 간직할 걸 그랬습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망연자실해 방황하던 그는 결국 마음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자신이 사랑했던 소금창고의 모습을 자신과 같은 심정의 이들에게 그 흔적이나마 나누고 싶어 이전까지 찍어놨던 모습들을 모아 전시를 연 것이다. 소금창고가 헐리고 꼭 6개월 만에 그는 다시 사진작가 김종환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1968년 군을 제대하고 직장을 따라 부산에 정착할 무렵 우연히 중고카메라 한 대를 산 것이 시작이 되어 사진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그는 사물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과 감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른다.
 
전국 방방곡곡의 산하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던 젊은 날의 열정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서 생명을 잉태했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시들지 않고 불타오르고 있다.
 
▲  소금창고   © 주간시흥

 
그리고 그는 다시 시흥연꽃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놓는 작업으로, 사시사철 달라지는 연꽃테마파크에서 제2의 사진인생을 시작했다.
“연꽃은 시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됩니다. 척박한 진흙에서 숭고한 기상을 피워 올리는 연꽃에서 마치 시흥의 미래를 보는듯한 기분마저 듭니다.”

지난 2009년도 그는 시흥을 사랑하고 시흥에서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사연’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시흥에 살면서 시흥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것을 널리 알려보자는 취지에서 모인 ‘시사연’사람들은 이제 시흥의 구석구석을 기록으로 남기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흥은 아직도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곳이 많습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무한한 가치로 다가오는 역사의 현장들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곳입니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이곳들이 사라져 가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잘 보호하고 보전하는 것도 지금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오늘도 그는 시흥의 현재를 간직하기 위해 길 을 나선다. 후손에게 그의 사진 한 장은 살아있는 시흥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 약력
- 사진작가, 시조시인
- 2008~2010 한국사진작가협회 시흥지부 제2대 지부장
- 2009~현재 한국환경사진협회 시흥지회장
- 2009 광주 서석문학 시조 등단
- 2011~현 한국사진작가협회 26대 본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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