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친밀하게 도민들과 만나는 방법이 있을까 싶습니다. 짧은 시간에 구석구석을 살피고 도민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소중합니다.”
지난 9월 18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천시에서 직접 택시를 몰고 난 뒤 밝힌 소감이다.
김 지사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이천시 장호원읍에 위치한 오성운수의 택시를 직접 몰고 시민들을 태우는 도정에 나섰다. 도지사 당선 뒤 28번째 체험이다.
이날 김 지사가 방문한 이천시는 경기도내 시·군 중 유일하게 택시 체험이 진행되지 않았던 장소였다. 이번 체험으로 김 지사는 경기도내 31개 시·군 전역에서 택시체험을 마쳤다.
김 지사의 택시체험은 2009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27일, 수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택시를 타고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 다양한 생각을 가진 도민들과 소통을 하며 지금까지 2년8개월 동안 시군 전역을 한 바퀴 도는 대장정을 마무리 했다.
김 지사가 이기간 동안 운전대를 잡은 시간은 236시간, 운행거리는 3천80km에 달한다. 요금수입으로 177만 120원을 벌었고 사납비와 가스비 166만7천원을 지불한 후 10만3천120원을 남겼다. 수익은 택시회사에 모두 기부했다.
경기도 택시 영업권역은 모두 25곳으로 안양·군포·의왕·과천, 구리·남양주, 오산·화성, 하남·광주가 영업권역을 같이 하고 있다. 김 지사는 28차례에 걸친 택시 체험 중 수원시에서 세 번, 부천시에서 두 번 운전을 했다.
김 지사는 31개 시.군 전역의 택시체험 완료를 기념해 이날 홀몸노인과 편부모 어린이, 장애우 등 30여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여주 신륵사와 목아박물관 관광에 나섰다. 관광에 필요한 택시 운전은 김 지사와 택시 베스트드라이버 9명이 함께 했다.
김용삼 경기도 대변인은 “현장 속에 답이 있다고 믿고 있는 김 지사의 뚝심이 31개 시.군 전역의 택시체험을 가능하게 했다”며 “택시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 많은 만큼 김 지사의 택시운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택시체험으로 시작된 경기도의 현장 행정 바람
◈ 김 지사가 택시체험을 통해 경기도를 일주하는 동안 경기도정도 변화를 거듭했다.
그는 "도정관련 많은 보고서들 중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많은데 이는 책상에만 앉아 엉뚱한 얘기를 하기 때문"이라며 "어떤 생생한 보고서도 현장에서 당사자들을 만나 듣는 이야기보다 못하다"며 공무원들에게 현장 중심 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김 지사의 택시체험 이후 경기도는 찾아가는 현장행정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관공서에서 민원인을 기다리던 기존 행정의 고정관념을 깨고, 직접 도민들을 찾아가 현장에서 민원을 해결한다는 행정의 역발상이었다.
지난해 8월 출범한 경기도 ‘찾아가는 도민안방’은 이런 역발상 현장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이나 대형마트, 관공서 방문이 어려운 농어촌 지역이나 노인복지시설, 기업 밀집지역에 공무원들이 직접 찾아가 민원상담을 벌여왔다.
생활민원, 일자리, 복지, 부동산, 건강상담 등을 실시하며 출범 1년만에 20만건이 넘는 상담실적을 기록할 만큼 도민들의 반응이 좋다. 경기도의 대표 정책이라 할 수 있는 기업SOS지원단, 전철역 민원센터, 기술닥터, 무한돌봄 등 사업 등도 모두 이러한 현장행정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달리는 전철 안에서 행정서비스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 경기도의 ‘민원전철’ 역시 같은 맥락이다.
택시체험은 필요한 쇼
◈ 물론 김 지사의 택시체험을 두고 ‘정치쇼’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보이기 위한 것으로 얼마 가지 않는 일회성 행사라는 것이 비판의 주요 이유였다.
한 경기도의원은 김 지사의 택시운전을 격려하면서도 “택시 면허까지 취득하며 보여주었던 열정이 단순히 개인적인 치적 쌓기나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이에 대해 “쇼가 분명하지만 그냥 쇼가 아니다. 하루 열 두 시간 택시를 모는 힘든 쇼”라며 “대통령도 꼭 몇 번은 해 보셔야 할 쇼”라고 맞받아쳤다 .
김 지사는 “택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쇼가 아니며, 분명히 필요한 쇼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택시체험에 대한 확신을 피력한 바도 있다. 자신이 고민하는 모든 문제의 답이 현장에 있다고 믿는 그는 하루 종일 택시를 몰며 진땀을 흘려 보면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된다며 택시체험 예찬론을 펼쳤다.
12번이나 사납금 못 채워
◈ 지난 2년 8개월의 택시체험 기간 동안 웃지 못 할 일도 많았다.
한번은 파주에서는 군복무 중인 외손자를 면회 온 70세 할머니를 모셨다가 부대를 못 찾아 헤매는 바람에 손해도 많이 봤다.
기본요금 거리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인근 포부대를 찾아갔지만 할머니가 찾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화를 걸어 외손자의 부대는 찾았지만 이미 요금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하지만 김 지사는 약속대로 기본요금만 받고 외할머니를 모셔드렸다.
김 지사를 알아 본 손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목적지에 이르자 그냥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도지사가 모는 택시는 공짜라고 생각한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 지사는 27번의 택시체험 중 12번이나 사납금을 채우지 못했다. 네비게이션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초보 택시 운전자인 김 지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
사납금 모자라면 사비로 충당… 수익 생기면 택시회사에 기부
◈ 택시운전을 하면서 느낀 김 지사의 소감은 트위터를 통해 바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해 지난 12월 26일 양평에서 택시 체험을 한 김 지사는 “날도 차고 구제역으로 양평의 모든 5일장이 폐쇄됐다”며 “양평의 면적이 서울의 1.45배나 되지만 인구는 1/100도 안 된다. 오늘도 사납금 채우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며 양평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반면 지난 8월 20일 가평에서 27번째 택시체험을 한 그는 “가평 폭우 심합니다. 계곡 물놀이 절대 대피”라며 피서객들에게 경고를 한 후 “택시 8시간 만에 입금하고 2만원 남네요. 휴가, 물놀이 오신 분들 덕택에 가평 상권이 연중 최고”라며 가평의 들뜬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덕분에 김 지사의 트윗 친구들은 경기도내 각 지역의 생생한 소식을 접하고 재밌다, 고생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전국지역신문 협회 경기도협의회 공동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