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봉은 비운의 임금 단종이 현 안산의 목내동 어머니 현덕황후의 묘소를 참배하러 가는길에 군자산을 바라보며 군자의 모습처럼 생겼다고 한데서 유래가 되어 군자산으로 또는 군자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봉우리가 하나라서 일봉산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2009년에 조성된 늠내1길 ‘숲길’의 일부구간이기도 하다. 시청에서 출발해 옥녀봉을 거쳐 작고개를 지나면 바로 건너편이 군자봉이다. 다소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다 보면 군자봉 사색의 숲을 만난다.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 계단을 숨가쁘게 오르면 드디어 군자봉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면 시흥시 전체를 조망 할 수 있고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군자봉성황제의 당목인 우람한 느티나무를 만난다.
어느 민족이든 건국에 관련된 신화에는 흔히 나무가 등장한다. 북유럽의 신화에는 위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세상의 중심으로 등장해 하늘과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맡았다. 북아시아의 전나무, 시베리아는 자작나무, 일본은 삼나무, 편백나무가 민족나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는 구체적으로 나무의 종류를 내비친 적은 없지만 대부분 그동안 학자들은 <제왕운기>의 기록된 한자의 의미를 그대로 해석해 박달나무 아래서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박달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자라고 단단하기가 나무 중 제일이며 홍두깨, 다듬잇돌부터 상상의 도깨비 방망이까지 만들어 냈다. 그러나 자람의 특성으로 볼 때는 신단수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민속학자들은 동네 입구 고갯마루에서 볼 수 있는 서낭당과 신단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오늘날 드물게 남아있는 서낭당의 나무와 비슷한 성격의 당산나무가 바로 단군이 나라를 열었던 그 나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전체 당산나무 중 약 2/3가 느티나무이다. 이 느티나무라면 세월을 압도하는 긴긴 삶과 우람한 덩치로 하늘과 땅을 잇는 환웅과 웅녀의 사랑을 묻어둘 나무로 손색없지 않은가. 신화 속 5천 년 전 신단수가 실제로 어떤 나무인지를 알아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단’을 오늘날의 당산과 관련지어본다면 당산나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느티나무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 박상진 교수의 이야기이다. 느티나무는 정자목으로도 불린다. 옛날 시골마을 입구 커다란 정자목은 지친 농사일에 잠시 막걸리를 마시고 땀을 식히는 넉넉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잎과 잎이 서로 겹치지 않게 배치해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그늘 공간을 확보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 나무는 잎을 늦게 틔운다 해서 느티나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군자봉 정상의 성황나무도 바로 느티나무이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상 199M의 높이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부터 기이한 일이다. 대부분 높은 곳에 사는 식물들은 바람으로 부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키를 낮추고살아간다. 그러나 이 나무는 당당하게 우람한 덩치로 키를 높이고 주변을 굽어보며 어느 누구이든 지치고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고 몇 백년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 2010년 태풍에 중간 가지가 꺾어져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뿌리부터 줄기와 잎까지 당산목으로 위용을 잃지 않는다. 올해도 지난 30일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제의는 국가와 시흥시발전, 국민들의 안녕을 비는 축원으로 시작되어 제의를 참관한 시민 개인의 소원과 복을 빌어주고 액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즐거운 축제의 분위기로 진행됐다. 넉넉한 품으로 무수한 세월동안 시흥을 굽어보며 시흥과 함께 애환을 나눈 군자봉 성황나무가 주민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오늘도 시흥을 지켜내고 있다. 한편 군자봉의 전승 설화상에 전래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서희와 덕지 등 설화와 관련된 사항에 오류가 있어 정정하겠다는 문화관광과의 답변자료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내용은 1993년 9월 제8회 경기도 민속예술 경연대회 출전을 전후하여 잿머리 성황제의 전승내용과 습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이러한 전승의 역사적 엄정성에 대해 문제점이 지적된 바가 있었으나 홈페이지에 다시 게재되어 개인으로부터 민원이 제기된 것이다.
박미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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