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을 움직이는 사람들 (42회)
열정의 시민활동가, 문화해설사 김문자 이사
연성동에 위치한 강희맹 묘 앞에 중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다. 조선 최초의 농학자로 우리나라에 처음 연을 들여와 시험 재배했던 강희맹 선생의 묘와 그 신도비에 대한 설명을 아우르며 시흥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이는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의 관광문화해설사 김문자 씨(68세)다. 경기문화관광해설사 1기인 그녀는 10명의 회원과 함께 우리의 역사와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일주일에 두 번 시흥문화원에서 봉사하며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시흥을 알려준다.
그녀가 처음 문화해설을 시작한 것은 8년 전 문화해설 교육을 받으면서 부터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문화해설사 교육 정보를 듣고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시흥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다지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는 역사이야기를 아이들의 시선을 모아 들려주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시흥시 최초 유아원인 미산 새마을유아원 설립원장으로 9년 동안 유아원을 운영했다.
교육을 평생의 업으로 여기며 문화해설사로 봉사하며 살아온 얘기를 물어보니, 소래면 시절 미산동 부녀회장을 시작으로 시흥시 부녀회 부회장, 시흥시 환경운동연합부회장, 시립 종합복지어린이집 초대원장, 시흥 목련 라이온스 회장, 북시흥농협 총회장, 여성단체 회장 등 수많은 단체의 수장이었고 게다가 대부분 단체의 첫 시작을 일구어 냈다. 시흥이 아직 시(市)가 되기 이전부터 시흥의 역사와 함께 하며 시흥을 만들어낸 시흥의 인물이다.
“70인생에서 40대 이후의 20년 삶이 내 삶의 전부인거 같습니다.”
그녀가 지역 봉사를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가 시흥으로 온 것은 그녀 나이 중년으로 접어든 사십 세가 되어서다.
인생의 두 번째 삶을 시작하게 하는 일이 그 때 생겼다. 일주일간의 새마을 지도자 교육으로 그녀의 인생관이 바뀌었다. 봉사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나눔의 삶과 섬김의 삶도 실현하며 그렇게 살아온 20년이다.
유아원을 운영하며 한국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 전문과정을 마쳐 2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이화여대 평생대학원 유아 행정직을 수료하며 유아교육 1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다시 방통대 유아교육과 편입, 수원여자전문대학 사회복지과 등 시흥과 서울 근교의 크고 작은 교육을 시간 나는 대로 찾아 다녔다. 교육은 그녀의 삶을 변화시킨 원천이기에 지금도 배우는 것을 즐긴다. 사람을 변화케 하는 교육의 힘으로 그녀는 매일 새롭게 성장한다.
“젊은 봉사자들의 멘토, 그리고 나의 멘토”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것은 시흥문화원 문화해설사 사무실에서이다. 문화원 이사 겸 봉사자인 그녀는 이곳에서 왕언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편하지 않을까, 일 많이 해 본 선배로써 후배들이 여려워 하지는 않을까 싶은데, 후배들 입에서 하나같이 나오는 말은 “저의들의 멘토세요.”다. 선배 봉사자로서 후배들을 지지해주고 믿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혜를 꺼내 보여준다. 그 지혜의 중심엔 사람이 있다. 봉사하며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 사람 존중임을 강조하며 일을 해결해 준다.
“김문자 이사님을 한 마디 표현하면 ‘열정’이세요.” 후배들의 말이다. 배움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 사람에 대한 열정이 많다고. 굳이 후배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녀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녀는 ‘열정녀’다. “새벽기도 갔다 와서 아침에 두 시간 영어 단어도 외우고 책도 보고 하잖아, 근데 요즘은 아침에 잠을 자게 돼. 내가 왜 이렇게 게을러지는지 모르겠어.”라고 너스레시다. “열정이 없으면 나는 사그라지는 거지. 그래도 가끔 게으름이 찾아올 때면 몇 년 전 인천에 있는 70대 노인들이 에베레스트 산 등정했던 일을 꺼내 보며 힘을 얻어.” 지난해 생각지 않은 질병을 얻어 수술을 하고 8㎏을 감소하는 투병을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문화원 봉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현재 새오름호스피스 이사, 새오름 포럼 이사, 시흥문화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엘림요양원 발마사지 봉사와 작은자리복지관 문해교실 강사도 한다. 지역활동을 오랫동안 하며 쌓은 경륜을 모임에 보태는 이사직도 열심이지만, 몸소 어르신의 발을 주무르고 어르신과 눈 맞추며 봉사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지만 명예보다 작은 봉사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이사로서의 대우보다는 회원으로 맡은 소임을 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손보경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