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를 캐기로 작정한 날인데, 반갑잖은 봄 손님 초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다.
‘밭에 가야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결행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오늘 도라지 캐는 일은 며칠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참이라 미룰 여유가 없었다. 2월 하순부터 부쩍 기온이 올라 며칠 사이에 싹이 올라올 수도 있고, 밭주인의 부지런함이 달라질 것에 기대하면서 날짜를 늦출 수도 없었다. 워낙 어김없는 분이라 때가 되면 어김없이 거름내고 밭을 갈아엎으셨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비해 무장은 단단히 했다. 움직이기 편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었다. 선크림을 두껍게 바른 후 방진 마스크 쓰고 밀짚모자를 눌러 썼다. 작업용 장갑을 꼈다. 출정을 앞둔 기사도 아니면서 단단히 준비하는 나의 과장된 행동에 웃음이 났다.
그래도 십 수 년 일요농부로 땀 흘려본지라 흙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았나 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구렁이 담 넘듯 슬그머니 물러가기 시작하자 농사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농사를 하느냐 마느냐, 해법은?’
‘이게 무슨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팔자에도 없는 고민은 왜?’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따르자 하고는 며칠 접어 두었다. 그리고는 손바닥만한 밭을 수소문했다. 꼭 작년 이맘때 일이었다.
얻은 밭은 이랑 10m 약간 더되는 정도로 세 뙈기. 이미 다 갈아졌고, 고랑도 다 켜진 상태여서 뭐든지 바로 심을 수 있어 마음에 흡족했다.
곰보배추 씨앗은 인터넷을 통해 마련했고, 주인댁에서 토란 몇 톨 얻었다. 모종 도라지는 발품을 팔아 도일재래시장에 가서 사왔다. 토요일 오전 반나절에 모두 심고 보니 도라지 모종이 부족해 더 사다 심었다.
심고 나서 처음엔 제법 자주 밭으로 발걸음 했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꼭 나를 두고 생겼다고 여길 만큼 나만의 게으름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 내일이나 가볼까?’
다음날이 되면 희한하게도 또 무슨 핑계거리가 나타났다.
‘하루 이틀 거른다고 큰일 날까?’
이렇게 일주일, 열흘이 쉽게 흘러갔다. 어느 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연 듯 들어 열일 제쳐두고 밭으로 향했다. 늦은 오전이라 햇살이 제법 뜨거웠지만, 견딜만하겠다 싶었다.
토란은 아무 기척도 없으나, 도라지들은 싹을 틔어 올라온 녹색 이파리에 윤기가 도는 게 제법 실하게 보였다. 곰보배추 씨 뿌린 밭도 여기저기 싹 나 떡잎 사이로 본 잎이 올라오고 있었다. 곰보배추는 사진으로만 봐서 그런지 뿌린 씨앗이 제대로 발아되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곰보배추 씨를 뿌렸는데, 다른 녀석이 나올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더 자라면 사진대로 제 모습이 나타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 싹이 나중에 곰보배추 대역을 그런대로 해 주게 된다.
잡초가 아직 어릴 때여서 납작한 날의 괭이로 긁어주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