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미래의 시흥인

주간시흥신문 | 기사입력 2009/03/11 [18:39]
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9/03/11 [18:39]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지닌 미래의 시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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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에 기가 죽었다. 솔직히 무슨 말로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성공한 자와 마주하고 그의 성공담을 들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자격지심이 동했는지도 모른다.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시간 약속대로 조성찬(43)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한창 일을 하고 있던 그는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하고는 다시금 분주하다. 하던 일이 마무리되자 마실 것부터 챙기는데 여직원을 두고도 직접 차를 타왔다. 고정관념을 일순간에 깨뜨리자 말문이 트이고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다.

전남 신안 출생인 그는 부모님의 이사에 맞춰 형제 중 제일 먼저 서울로 상경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온 그는 이 또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금천구 주변을 맴돌며 초·중·고를 마쳤다. 그것이 지금의 시흥살이가 된 근원이기도 하다. 신문기자가 되리라는 포부를 지니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생 운동이라는 전력은 그의 꿈을 접게 만들었다.
 
영업직과 학습지 교사라는 쉽지 않은 직업을 택했다. 학습지 교사로 부천의 중동과 상동을 오가며 가정 방문을 하다 보니 절로 빈부의 격차가 눈에 들어왔고 새삼 자신의 불우함이 피부에 와 닿았다. 그리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자연히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느꼈고 인생 목표를 수정해야 했다. 사회지도자층으로의 역할이 가능한 것을 찾아 도전의식이 발동했고 남을 돌아 볼 수 있는 자신의 자리를 위해 사법고시를 택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막 개발된 정왕동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늘 지나치던 시흥 대야동에서 사시 준비를 시작했다. 복지관에서 책과 씨름한지 3년. 그는 전공을 하지 않았음에도 비교적 빠른 시일에 사법고시에 패스했고 원하는 바대로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2002년 안산에서 사무실을 개원했지만 곧 개업 지 대상 일 순위였던 시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단 배후 도시인만큼 근로자들도 많고 낙후한 지역이 있으니 자신의 계획을 펼쳐나가기에 적합하다는 지론이었다.

법원이 먼 거리에 있는 탓에 재판을 하러 가려면 길에다 시간을 많이 허비하고 수입 또한 안산 시절보다 줄었지만 지역민들과 가까이에서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다는 그. ‘허가 낸 사기꾼’이라는 의미에 담긴 높은 수익률을 위한 거짓 상담과 과장된 부풀리기 상담의 유혹을 이겨내고 본질을 돌아보고 있다는 조 변호사. “친분이 있는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투명하고 정직하게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진실과 성실로 일관하고자 하는 자신의 신념을 보여준다.

◈ 감성적인 문학청년의 시흥예찬
얘기가 한 참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한 편에 세워 둔 시화가 눈에 들어왔다. 시를 쓰냐는 질문에 멋적은 웃음으로 첫 대답을 한다.
대학 시절 시·수필 등 작품 활동을 하며 글을 써 왔는데 법조인의 길을 걷다보니 정서가 메마르고 건조해져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 웃음의 변. 나름 글을 쓰고 싶어 시향문학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활동이 미미해 아쉽다고 한다.

못다 이룬 기자의 꿈을 대신하여 지방지 운영위원을 맡아 중앙지와의 차이도 분석해보고 더 나은 언론을 위한 조언도 하고 있다는 그. 안산에서 지방지에 칼럼을 일 년간 쓰기도 했던 그는 일상에 쫓기다보니 들어오는 칼럼 제의를 쉽게 수락 할 수가 없단다. 기회가 주어져 법률에 관련된 상식만으로 칼럼을 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는 시흥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인접해 있는 바다, 도시 안에 펼쳐진 농촌은 시흥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다.

무엇보다 시화공단이 있어 편의시설이 함께한다는 것도 한몫 보탠다. 아이들이 자라면 교육환경을 핑계로 시흥을 뜨지 않을까 해서 은근슬쩍 물었더니 지금생각으로는 갈 마음이 없단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조금 부족한 부분도 채워져 살기 좋은 시흥이 될 거라 믿는다고 덧붙인다. 시흥에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지역사회에 그다지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털어 놓기도 한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노라 거창하게 큰소리도 못 치겠다고 한다. 마음과 달리 현실이 그를 붙잡고 있기에 아직은 희망사항으로 숙제로 남겨 놓고 있다고 한다.

정치입문에 대한 견해를 물으니 손사래와 함께 고개가 절로 절래 절래 거린다. 농담 삼아 “돈이 없어요.”라며 웃는다. 가정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 일차적 이유다. 지금 당장은 정치의 주인공이 되고픈 생각이 없다는 것. 지역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봉사를 하다보면 먼 훗날 욕심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책과 판례와 씨름하는 일이다 보니 일에 쫓겨 같은 변호사끼리도 만나기 힘들다며 은근 사업 얘기를 비친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창조적인 아이템을 구상해 사업이란 매력에 빠져 보고 싶단다. 이 또한 호기심이 강하고 도전 의식이 강하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이 생겨난 그의 단면을 보여주는 계획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느라 어색한 포즈를 취한 그는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열어 보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아내와 개구쟁이 아이들의 생활모습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다.

스스럼없이 식구들 자랑에 빠진다.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지역민들을 위해 일을 할 기회가 찾아오면 또 그렇게 애정을 가지게 되리라. 솔직한 남자. 미래엔 그가 시흥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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