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보다 행동과 실천으로 움직이는 사람

주간시흥신문 | 기사입력 2008/10/19 [15:56]
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8/10/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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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곶동 459번지에서 시작한 어린 시절은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일제 강점기 소화16년(1941년)에 지어 살던 낡은 집을 허물고 최근에야 새롭게 건축하여 80순 노모와 가족이 함께 다정하게 살았으나 지난해 모친이 돌아가신 후로는 왠지 아직까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예전의 월곶리역 주변은 장곡, 장현, 도일에 비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좀 더 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청소년 시절부터 생각 했다는 이명운 시흥비전 시민연대 상임대표를 찾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청년회를 조직하여 마을 공동 재배, 마을회관 건립 등을 주도하며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갔고 지역 소식을 전하는 지역 신문을 제작하여 주민들에게 배부하는 등 근대화 운동을 하며 청년 시절을 보낸 그는 고단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1970년대에는 경제의 암흑기를 탈피하고자 달월교회를 중심으로 달월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이사, 부이사장을 거치면서 경제 운동을 시작하여 고리채와 장례 쌀을 없애는 일에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도?농 직거래 사업을 펼쳐 지역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앞장섰고 독일의 아데나워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농기계협동반을 시흥군에서 최초로 구성하여 영농 기계화 사업의 시작을 열기도 했다.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닐 때 지금은 사라진 달월역을 간이역으로 만드는 일에도 앞장을 서 이제 수인선 전철이 지나는 이곳에 달월역이 새롭게 개통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며 1984년도에는 지역 여건상 어려웠던 달월에 보건진료소를 앞장서 유치하여 지역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주는 가정 의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도 앞장서 왔던 이명운 상임대표는 그때를 회상하며 잠시 묵상에 잠긴다.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5.18 민주화 운동과 농민 운동, 수세 폐지 운동을 펼치는 광주 호남 사람들의 역할과 희생을 1982년도쯤 그 진실을 알게 되고 깨닫고 민주화 운동 대열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정보부로부터의 탄압과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국 기독교연맹 농민회에 참여 하여 전국을 돌며 농민 운동을 펼쳐 나가게 되었고 그와 함께 달월신협의 임원으로 경력을 쌓으며 달월신협의 무보수 명예직 이사장에 선출 되었다.
 
이후 가정보다는 지역 주민을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밖에 없었다. “신협 운동은 곧 경제 운동이요, 근대화 운동이며 민주화 운동이고 지역 주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이다.”라며 쉼 없이 신협 운동에 전개하며 자신의 생활을 위해 지역 최초의 포도재배, 원예농사, 양돈, 양계 등을 하면서 무보수 명예직인 신협 이사장으로 지역경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故 제정구 국회의원과 함께 한국화약 공유수면매립반대 시민위원회를 조직하여 16년간 위원장을 맡아 시민운동으로서의 시흥사랑을 순수하게 입증시켜 이후 군자매립지 148만평을 시에서 매입할 때 7만 5천 평을 무상기부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월곶에만 있던 달월신협이 거모동, 정왕동, 장현동으로 확장하면서 자산 400억 원의 중견 신협으로 성장하는데 앞장서며 신협 경기도 연합회 이사, 중부 평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지도자의 역량을 펼쳤던 이명운 상임대표는 29세 때 달월교회에서부터 시작한 종교 활동이 현재는 시흥 남 지방 장로회장으로 충실한 기독교 신도이기도 하다.

■ 고난의 시기에 정치의 길로 들어서며

5.18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당시 황색 깃발이 넘치던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지방자치의회 초대 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신 이명운 상임대표는 2대 시의원에도 재출마했지만 당시 군자동을 안산에 편입하려는 운동에 반대하며 투쟁했던 것이 이유가 되어 안타깝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대 의회에는 오히려 군자동 주민들이 단독 후보를 만들어줘 무투표 당선이라는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고집은 시흥을 위해 어릴 적부터 길들여져 왔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시흥시 의회 후반기 의장과 4대 후반기 의장을 두 번씩이나 역임하는 기록을 남긴 그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안산 교육청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시흥 교육이 자신이 ‘교육청 유치 추진위원장’을 맡으며 ‘시흥 교육청’을 유치하는데 성공했을 때라고 회고하며 아직도 교육청사가 제대로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를 위해 각 계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방자치 정치인으로서는 중앙 정치의 힘에 억눌려 이상적인 시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한계를 느끼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노무현 후보가 결정되자 시흥 을 지구 선대본부장을 맡아 민주당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총력을 다 했으나 이후 분당이 되며 마음의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시흥 발전을 위해 시흥시장에 대한 도전은 “인물 중심, 지역 중심 후보로의 길이 거센 중앙정치의 바람에 날아가 버렸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많이 받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요구 받는다

시민운동의 중심에서 바라보는 시흥의 미래 역할을 위해 그동안의 의정활동을 경험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제점과 시민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시흥비전 시민연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흥 지역의 미래가치를 충족시켜줄 시흥전철 문제에 대해 오프라인에서 시흥전철대책 시민연대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시흥교육 발전을 위해 한국화약 공유수면매립반대 시민위원회의 활동으로 군자매립지 인수 시 7만5천평을 기부 받게 된 땅을 자본금으로 시흥교육장학재단 설립을 주장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는 이명운 전시의회의장은 소신과 의리를 지키는 이 지역 출신 지도자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명운 상임대표는 무릇 사회 지도층은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고 성경 구절 중 누가복음 12장 48절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요"를 보여주며 순수한 마음으로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주요경력

- 달월신용협동조합 이사장(전)
- 시흥시의회 3대 후반기,4대 후반기 의장(전)
- 시흥 남 지방 장로회장
- 장곡초등학교 총동문회장
- (주) i ENT 대표이사
- 시흥비전 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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