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박영규 기자]
올해 8월 14일은 파키스탄의 75번째 독립기념일이다. 매년 8월 14일은 파키스탄의 국경일이다. 1947년 영국령 인도제국 종식에 따라 파키스탄이 독립하고 주권국가로 선포된 날을 기념한다. 파키스탄은 영국령 인도의 북서부 지역에 독립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파키스탄 운동의 결과로 생겨났다. 이 운동은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이끄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슬람력에서 독립일은 라마단 27일과 일치하며, 그 전날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독립기념일 행사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리며, 대통령과 국회의사당에는 국기가 게양된다. 이어 애국가와 지도자들의 TV 생중계 연설이 이어진다. 그 날의 일반적인 축하 행사와 축제에는 국기 게양식, 퍼레이드, 문화 행사, 애국적인 노래가 포함된다. 이 날 많은 시상식이 열리는데, 파키스탄 사람들은 집 위에 국기를 게양하거나 차량과 복장에 전시한다.
■ 역사 / 배경
파키스탄은 역사적으로 19세기 내내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다. 동인도 회사는 17세기에 식민지 인도에서 무역을 시작했고 회사 통치는 플라시 전투에서 승리한 1757년부터 시작되었다. 1858년 인도 정부법에 따라 영국 왕실은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을 직접 지배하게 되었다.
1940년대 인도 독립운동이 격화되면서 전인도 무슬림 연맹이 이끄는 무슬림 민족주의의 급등이 일어났는데, 그 중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가장 두드러진 지도자였다. 오래전부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감정이 격화되고 있었다.
영국령 인도 내 무슬림 이주민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정당으로 무슬림 연맹은 1940년대 인도 독립운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남아시아에서 무슬림 국가로 파키스탄을 탄생시킨 원동력으로 발전했다.
1940년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열린 전인도 무슬림 연맹 총회에서 라호르 결의안이라는 공식적인 정치적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이 결의안은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독립 국가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남아시아 북서부 지역에 이슬람 국가를 분리하자는 아이디어는 1930년 12월 Allama Muhammad Iqbal에 의해 소개되었다. 3년 후, Chaudhary Rahmat Ali가 발표한 선언문에 "파키스탄"이라는 별도의 국가 명칭이 제안되었다.
■ 독립
1947년 6월 3일, 영국 정부는 영국령 인도를 두 개의 독립 국가로 분할하는 원칙이 승인되었다고 발표했다.
Mountbatten 총독은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항복한 지 2주년이 되는 8월 15일을 정권 이양일로 정했다. 그는 8월 14일을 파키스탄으로의 권력 이양식 날짜로 선택했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47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인도 독립법은 영국령 인도를 인도 자치령(나중에 인도 공화국)과 파키스탄 자치령(나중에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분할했다. 분할은 격렬한 폭동과 대규모 사상자를 동반했고, 아대륙 전역에 걸친 종교적 폭력으로 인해 거의 1,50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으며, 수백만 명의 이슬람교도, 시크교도, 힌두교도 난민들은 독립을 둘러싼 몇 달 동안 새로 그어진 국경, 각각 파키스탄과 인도로 이동했다.
1947년 8월 14일, 새로운 파키스탄 자치령이 독립했고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카라치에서 초대 총독으로 취임했다. 독립은 널리 퍼지며 기념되었다.
■ 공식 기념식
독립기념일은 파키스탄에서 기념되는 6개의 공휴일 중 하나이며 파키스탄 전역에서 기념된다. 광복절 경축행사 계획을 마련하고 확정하기 위해 지방정부에서 공무원, 외교관, 정치인 등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개최한다. 공공기관, 교육기관, 정부 부처가 세미나와 체육대회, 광복절까지의 사회문화 활동을 조직한다.
공식적인 축제는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리며 국회의사당과 대통령직의 국기 게양으로 시작되며 수도에서는 31발의 예포, 지방에서는 21발의 예포가 뒤따른다. 파키스탄의 대통령과 총리는 생방송으로 연설한다. 정부 관료와 정치 지도자, 유명인사들은 집회, 기념식, 행사 기간 동안 연설을 하며 파키스탄의 업적과 미래에 대한 목표를 강조하고 국가 영웅들의 희생과 노력을 찬양한다.
국회의사당,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 총리 비서실을 포함한 정부 건물들은 밝은 색상으로 장식되고 빛난다. 국가 기념비에서는 국군이 경비를 하도록 교체된다. 육군, 공군, 해군은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원수, 공인, 외교관 등 국제 인사들이 파키스탄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해외 주재 파키스탄 공관 곳곳에서 국기 게양식이 열린다. 해외의 고위 인사들은 의식에 주빈으로 초대되고, 그들의 군부대는 종종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국경에서는 파키스탄 준군사조직이 전통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군사조직과 사탕을 교환한다. 국기는 카라치에 있는 진나의 무덤으로 통하는 Shahrah-e-Faisal, Shahara-e-Quaideen, Mazar-e-Quaid Road 와 같은 주요 도로에 게양되어 있다. 1940년 파키스탄 결의안이 통과된 라호르에 있는 Minar-e-Pakistan은 독립기념일 전날 완전히 조명되어 파키스탄의 창조에 있어 그 중요성을 나타낸다.
■ 공공 기념 행사
8월이 시작됨에 따라 파키스탄 전역에 국기와 깃발, 현수막과 포스터, 훈장, 국가 영웅 사진, 멀티미디어 및 기타 축하 용품 판매를 위한 특별 노점, 박람회 및 상점들이 설치된다.
자동차, 개인 건물, 집, 거리는 국기, 촛불, 석유 램프, 우승기와 깃발로 장식되어 있다. 독립을 주제로 한 의류, 보석, 장식을 판매하는 일류 디자이너 패션 아울렛과 마찬가지로 기업들도 마케팅을 한다.
그 날은 전국의 사원과 종교적인 장소에서 파키스탄의 진실성, 연대, 그리고 발전을 위한 특별한 기도로 시작한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와 다른 행사에 참석하는 시민들은 보통 파키스탄의 공식 색상인 녹색과 흰색 옷을 입는다. 많은 사람들은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나고, 파키스탄 음식을 먹으며 식사를 하고, 휴일을 기념하기 위해 휴양지를 방문한다. 정교한 불꽃놀이, 거리 퍼레이드, 세미나, 텔레비전 방송, 음악과 시 경연대회, 어린이 쇼, 미술 전시회를 포함한 공공 행사들은 축하 행사의 흔한 부분이다. 국기 게양과 함께 이날 정부 각처와 학교, 집, 기념비 등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PAKISTAN ZINDABAD' 등 애국 구호가 제기된다. 국내외에서 뮤지컬 콘서트와 댄스 공연이 마련돼 인기 아티스트들이 출연한다. 1947년 독립 이후 이주와 폭동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비롯해 파키스탄 육군 순교자들과 NISHAN-E-HAIDER수상자들, 정치권 인사, 유명 예술가,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파키스탄의 이민자 공동체들도 이 축제에 참여한다. 파키스탄의 주요 공동체가 있거나 파키스탄과 강한 관계를 공유하는 국가에서는 축하의 표시로 파키스탄의 국기가 자주 눈에 띄는 구조물, 광장, 공공 기념물에 비춰진다.
파키스탄 이주민들은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문화행사를 주최하고, 뉴욕, 런던, 두바이 등 파키스탄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는 공개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밖에 친 파키스탄 정서를 품고 있는 잠무 카슈미르 출신 일부 카슈미르인들이 이날을 준수한 것으로 알려져 인도 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 파키스탄의 75번째 독립기념일 한국에서도 열려
한편 한국에 있는 파키스탄 이주자들은 독립기념일 행사에 많이 참여하는 활기차고 애국적인 공동체로 한국에서도 독립기념일 해사가 진행된다.
행사는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이 주관하며, 주한 파키스탄 대사가 파키스탄 국기를 게양한다. 모든 대사관 직원들과 많은 지역 주민들이 이 행사에 참여한다. 파키스탄 대통령과 총리의 메시지는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모든 참석자들에게 읽힌다.
올해는 주한 파키스탄 커뮤니티(Pakistan Business Association)가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과 함께 용인시 평생학습관에서 축제와 문화행사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에는 가족과 어린이, 교민, 언론사, 학계 등 괄목할 만한 수의 파키스탄 커뮤니티가 참석하며 이번 행사는 2019년부터 코로나19로 행사를 개최할 수 없게 되면서 3년 만에 대규모로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