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김용일
유왕 11년 신후 일족의 반란군이 수도인 호경을 향해 물밀듯이 쳐들어오자 다급해진 유왕은 봉화를 올려 제후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봉화가 오른 지 이틀이 지나도 제후들의 구원병은 모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반란군이 궁궐로 쳐들어오자 유왕은 작은 수레에 포사와 그의 아들 백복을 싣고 급히 후문으로 빠져나갔지만 곧 붙들려 견웅족의 추장에게 넘겨져 유왕과 백복은 단칼에 죽고 포사는 수레에 태워 진중으로 데려가 자기 여자로 삼았다.
반란군의 주동이었던 신후는 궁궐로 들어가 먼저 냉궁에 갇혀있던 신후를 구해내고 유왕과 포사를 찾았으나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애당초 그의 계획은 왕후와 태자를 복위시키려고 했을 뿐이고 유왕을 죽일 의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후는 잔치를 베풀어 견웅을 위로하고 처음 약속대로 금은보화와 비단을 잔뜩 주어 그들을 돌려보내려 했으나 견웅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신후는 할 수 없이 밀사를 보내 제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견웅을 몰아내는데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여 이에 호응한 제후들이 군사를 출동시켜 견웅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견웅을 몰아낸 신후는 잔치를 벌여 제후들을 환대하고 태자 의구를 받들어 왕위에 오르게 하니 이가 곧 평왕이다.
견웅이 비록 쫓김을 당하긴 했지만 원한을 품고 국경을 침범하여 점차 호경을 육박해오자 평왕은 낙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낙양은 지리적으로 천하의 중심지이고 제후들이 왕래하기에 편리한 곳이었다.
이때까지를 서주시대라고 하는데 유왕이 죽음으로 서주시대는 막이 내리고 동주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천자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져 제후들이 천자의 권위를 업신여기게 만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천자가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주 왕실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생각으로 깔보기 시작했고 견웅은 주 왕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주 왕조의 실제 통치력은 서주의 유왕을 끝으로 막을 내렸고 동주라는 시대는 영향력을 상실한 채 단순히 상징적인 천자국으로 존재했을 뿐이어서 동주시대라는 말 대신 춘추전국시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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