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집 앞 마당에 커다란 자귀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겨울이면 달린 콩 꼬투리가 바람에 달그락달그락 부딪혀 내는 소리가 밤이면 유난히 더 크게 들려와 늦은 밤 마실이 좀 무섭기도 했다.
나무를 깎는 연장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드는데 사용한 나무라 하여 자귀나무라는 설과 자는 모습이 귀신과 같은 나무라 하여 자귀나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옛사람들은 자귀나무를 ‘장마를 예고하는 나무’라고도 불렀다. 자귀나무의 마른 가지에 싹이 트면 곡식을 파종하고 첫 꽃이 필 때는 팥을 심었다. 피어난 자귀나무 꽃망울이 만발하면 그 해 팥 농사는 풍년일거라 점쳤고, 어김없이 그 즈음에 장마가 시작되었다.
화려하게 피어있는 자귀나무의 꽃을 바라보노라면 어찌 저런 모습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신비롭다. 분홍색 물을 들인 가는 명주실 뭉치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풀어놓은 듯한 모습, 공작이 부채 모양의 깃을 펼친 듯한 모습, 혹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약간 벌어진 붓에 분홍 물감을 묻힌 듯 한 모습 등 자귀나무 꽃의 화려함과 특이함 때문에 꽃에 대한 묘사도 다양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가 억수로 퍼붓는 그 즈음 연분홍의 꽃술을 피어 올려 진초록의 잎들과 어울려 장관을 연출한다. 이렇게 피어난 자귀나무 꽃을 따다 말려 베개 밑에 넣어서 가족들이 꽃향기를 맡으며 편히 잠들게 하거나 밖에서 마음이 상해 들어온 남편의 술잔에 띄워 건넸다는 고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습하고 눅눅한 장마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향기로운 자귀나무의 꽃차 한 잔 하실래요?
/숲해설사 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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