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시흥포커스』는 제4호 표지모델로 조시영 (주)대창회장을선정했다.
45년의 한평생을 외길로 걸어온 조시영 회장은 (주)대창을 국내 1위의 황동봉 제조업체로의 부상시켰는가 하면 가장 앞선 현대화 시설로 세계시장을 선점하는 등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해 황동봉 시장 전국 1위 세계 5위권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시흥상공회의소 초대회장으로 시화공단 입주 후 공장가동이 활성화 될 시기에 열악한 환경이었던 기업 경영인들에게 원활한 경제 활동을 돕고 정보교류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시흥상공회의소를 태동시키고 초대회장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초석을 세움으로서 지역경제인들로 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비전시흥포커스』는 조시영 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기업 경영철학과 그동안의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발전을 위한 역할 등을 들어 본다.(편집자 주)
(주)대창의 주요 생산 제품에 대해 소개해 주시길.
(주)대창은 구리와 아연의 합금제품인 황동을 용해, 압출, 인발 등의 가공공정을 거쳐 봉과 코일, 선의 형태로 제조되며 전 산업의 뿌리산업인 소재이 가운데서도 황동봉이 주력 아이템입니다.
출시되는 황동봉은 다시 선반공정을 거친 부품소재로 제작돼 전기, 전자, 자동차, 기계, 선박 등 산업 전 분야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있지요.
특히 (주)대창은 폐자원을 회수 재활용하여 귀중한 원재료로 사용하는 등 자원재생 활동에도 큰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주)대창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1968년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장사를 하다가 우연찮게 입사한 한 작은 공장에서 황동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들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30살의 젊은 나이에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황동 시장이 투자금액 많이 소요되지 않으면서 기술적으로도 해결이 가능하고 앞으로 미래 사업으로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됐으며 1974년 서울 문래동에 ‘대창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지금의 ‘(주)대창’의 시작입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부평으로 공장을 넓혀 갔으며 1985년에는 반월공장을 완공하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에는 황동의 용해와 가공은 화목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매우 낡은 방식이었으나 반월공단으로 옮기면서 당시 비교적 앞선 기술인 전기로를 사용하여 황동봉 생산의 주요 메이커로 부상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황동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었습니다. 제품의 대부분은 수입품이었고, 국산 품목은 주물이나 저급품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저는 이후 회사를 국내는 물론 동남아와 전 세계 1위의 황동봉 제조업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큰 목표를 세우고 전 세계시장을 돌며 기술력 확보를 위한 조사와 기술 습득에 전념했습니다.
저에겐 한 가지 제품으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문어발식으로 확장을 하기 보다는 한 아이템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작은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1985년부터 국내 뿐 만 아니라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시장 조사에 몰두했습니다.
효과적인 시설 투자와 생산원가를 줄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특히 이 분야 선진국이 동독이었는데, 1980년대만 해도 독일이 통일되기 전이라 입국절차가 까다로웠으나 그곳까지 가서 시장조사는 물론 기업의 나갈 방향들을 세우게 됐습니다.
장치산업이라 설비가 중요했고, 앞서 있는 기업들의 설비나 그 운용 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며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던 것도 주효했다고 봅니다.
1989년에는 기업을 공개해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마쳤으며 1995년에는 1만5천 평 부지에 시화공장을 매입하고 당시 세계최고 첨단수준인 황동봉 자동생산라인을 준공하게 됐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화공단의 중심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장치산업이라 설비가 중요했고, 앞서 있는 기업들의 설비나 그 운용 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며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던 것도 주효했다고 봅니다. 국내 시장의 규모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세계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현재 내수 60%, 수출 40%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대창의 기업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기간 동안에는 기업운영에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어려웠던 시기와 이를 극복해온 과정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기업을 운영하면서 대략 10년 주기로 어려움이 닥쳐왔던 것 같습니다.
1996년 투자 후 경영에 매우 어려움이 있었으나 1997년 국내 외환위기인 IMF를 맞으면서 수출이 중심이었던 회사는 환율 상승과 설비의 경쟁력을 통해 수출이 늘어났으며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 오히려 기업의 성장에 발판이 될 수 있었다.
이어 2008년에 발생된 세계 금융사고인 리먼브라더스로 인한 금융위기가 또다시 회사에 어려움으로 닥쳐왔다. 당시 환율차이로 인한 큰 손실이 있었으나 이듬해 어렵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몇 차례의 위기극복을 이겨내고 이후 성장을 거듭한 (주)대창은 자회사를 포함하여 연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대형 기업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제품인 황동봉 제품을 주력으로 이 분야에서 국내 1위, 전 세계 5위권의 기업으로 (주)대창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어 미국 등에서 벤치마킹을 오는 경우도 있지요.
“(주)대창이 업계에서 이뤄낸 실적은 다양하다.
결과는 그동안의 수상경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1995년 1천만 불 수출의 탑 및 국무총리 상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한국신기술대전 실용화기술대상 국무총리 표창, 이듬해에는 동탑산업훈장, 창업 30년인 2004년에 1억불 탑과 금탑산업훈장, 2006년과 2008년에는 각각 2억불과 3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화려한 업적을 세우며 기업경영인들에게 성공기업으로 인정을 받아 왔다.“
조시영 회장님의 경영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무엇이든지 ‘세계1등, 동남아 1등, 국내 1등이 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본 틀을 갖고 경영해 왔죠.
황동봉 분야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국내 1위는 물론 세계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많은 세계시장을 뛰어다니며 보고 배우고 느끼며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왔으며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지요.
- ㈜대창의 사훈은 ‘정직’입니다.
특히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데 주력하고 거래처와의 상생을 기업경영의 최대 지표로 삼아왔습니다.
- 기업경영에 중심은 인재양성과 기업과 근로자간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업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경쟁력은 사람입니다. 뛰어난 인재가 많은 기업일수록 미래지향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고 그 인재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저는 대창의 전 직원이 모두 즐겁게 일하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도록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또한 기업과 근로자는 상생하기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살 수 있으며 근로자가 열심히 해주어야 기업이 살아갈 수 있으며 기업이 살아야만 직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기업이나 근로자 어느 쪽의 일방적으로 가면 안 되고 서로가 한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대창의 미래 방향과 회장님의 개인적인 목표 등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세계시장은 하나입니다. 또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와의 경쟁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노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가기는 매우 어렵고 현재 제조라인들은 자동화하는 등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며 기업발전은 노사 간의 협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앞으로의 세계는 첨단 자동화 시대 4차 산업 시대이다. 누가 4차 산업 시대에 잘 따라 갈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첨단 자동화 생산능력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지요.
앞으로의 (주)대창의 미래는 후세 경영인들의 몫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저는 그동안 기업을 이끌어 오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즈음에는 쉽게 피로가 쌓이고 잘 풀리지 않아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제 건강을 위해 하루에 1만보 이상 걷기를 하는 등 많은 운동을 하며 체력을 관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조시영 (주)대창 회장의 지역 활동은 누구도 뒤를 따르기 쉽지 않다.
시흥상공회의소를 설립하여 기업인들의 안정적 경제활동을 통해 성장하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는가 하면 지역경제발전은 물론 시흥과 안산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발전에도 앞장서왔다.
한국카네기가 시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시흥카네기를 지원하여 지역 CEO들의 평생교육을 통한 자기계발로 자신감을 심어주고 상공인인들 간에 소통의 장이 되도록 했으며 CEO들이 지역에 대해 더욱 많은 애정을 갖도록 기여했다.
이밖에도 지역발전을 위하여 시흥세무서 유치는 물론 시흥세무서 세정발전위원회, 시흥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 안산법원 조정위원, 안산검찰청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수장 등을 맡으면서 지역사회의 다양분야에서 선도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시화공단이 활성화되기 시작 무렵에 시흥상공회의소를 설립하고 초대장으로 많은 역할을 해왔는데 설립 배경과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1990년 시화공단이 분양을 시작하여 기업들의 입주가 많아지면서 기업들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뭉쳐 단합하여 정보교류가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속이 기업경영인들의 구심점이 될 경제 단체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요구됐죠.
1997년 시화공단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시흥상공인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공인간의 정보교류는 물론 국내 경제정보 제공 등 기업경영인들의 시야를 넓히고 지역경제성장을 위해 시흥상공회의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시흥상공회의소 설립 초기에는 지역경제인들과 무수히 많은 중국 방문을 통해 시흥시와 중국과의 정보교류를 통해 상호간에 많은 발전을 이뤄나갔습니다.
중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국내기업들은 물론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과 중국기업들이 교류를 위한 교량역할을 해왔으며 당시 중국은 개방 초기라서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중국 방문 시 크게 환대를 받았으며 중국을 통해 경제발전에 많은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지요.
또한 시흥상공회의소가 지역기업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이끌어 왔으며 당시 시흥상공회의소와 기업인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시흥시와 시흥시의회에서도 많은 협조를 해 주고 각 기관에서도 협조가 매우 잘되어 시흥상공회의소가 더욱 발전하고 지역에 중심적인 경제단체로 정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흥상공회의 회장으로 지역경제인으로, 지역을 이끌어 가는 리더로 많은 지역 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의 활동들을 소개해 주시길.
시흥상공회의소에서는 지역사회 지자체나 기관장들의 협조가 매우 잘되고 있었으며 지역경제인들도 힘을 모아 적극 협조 해 주면서 많은 지역 활동들을 펼쳐 왔지요.
특히 시흥상공회의소 기업인들이 지역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시흥시 장학재단을 정착시켜가는 역할은 물론 시흥시 1%복지 재단으로 바꾸어 민간단체로 전환시켜 운영하는데도 기업인들의 지원이 적지 않았지요.
시흥세무서를 유치하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으며 경찰서가 들어오게 되면서 시흥경찰서에서는 경찰발전위원회를 설립하여 민간과 경찰과 상공회의소 회원들이 협력해서 협력단체로 구성하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지요.
또 세무서는 세정발전협의회가 발족되어 상공인과 세무서가 서로 협력하며 애로사항을 풀어가며 활동해왔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하면 안산법원 검찰청들이 들어오면서 법원 조정위원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민간인들이 재판이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재판 당사자들 간에 피해가 적어지도록 웬만한 것은 서로 합의를 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로 재판까지 가지 않고 서로 적당히 양보하며 끝내도록 도왔습니다.
검찰청에는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이사장 등을 맡아 범죄 피해를 당하고 오갈 데 없는 어려운 피해자들을 보호해주는 역할로 매우 보람된 일 이었습니다.
지역기업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정부나 지자체에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 기업인들이 그동안 열심히 해왔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으로 중국대륙의 엄청난 시장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며 기업이 안정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기업인들이 경쟁력을 갖고 기업 활동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제조업은 국가의 주춧돌 역할로 주춧돌이 건실 해야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어려움이 없을 때가 없었지만 기업인들은 이를 잘 극복해왔으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조시영 회장 프로필
▲ 학력 및 이력
-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
- 현 대창그룹 회장
▲ 경력
- 시흥상공회의소 초대 회장
-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조정위원회 회장
- 시흥시 교육발전진흥재단 이사장
- 안산.광명.시흥지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이사장
- 한국동공업협동조합 이사장
- 한국수출입은행 히든챔피언클럽 회장
- KDB산업은행비즈니스리더스포럼 회장
▲ 주요 포상
- 상공부장관상 (무역의 날)
- 국무총리상 (무역의 날)
- 연세대 최고경영인상 (연세대학교)
- 산업포장 (조세의 날)
- 국무총리상 (신기술대전)
- 동탑산업훈장 (납세자의 날)
- 공정거래위원장상 (공정거래의 날)
- 금탑산업훈장 (무역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