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 속눈썹이 예뻐요

<허만의 사람 사는 이야기>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8/08/16 [16:0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8/08/16 [16:05]
[허만] 속눈썹이 예뻐요
<허만의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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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의 사람 사는 이야기>

속눈썹이 예뻐요

 

일요일마다 나만이 즐기는 즐거움이 있다. 달리 보면 나만이란 말을 쓰기가 민망하기도 하다. 일요일마다 손녀들 만나러 가는 기쁨에 푹 빠져 있는데, 무슨 특권처럼 말하고 있다니.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행복인데.

손녀 둘이 연년생으로 태어나 요즈음은 뛰어다니고, 못하는 말이 없다. 그러니 내 마음을 홀딱 빼앗길 수밖에.

어느 날, 애기들과 놀고 있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애기들 속눈썹이 무척 기네?”

아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인 양 얼른 대답이 나온다.

요즘 아이들 다 그래요. 미세먼지 때문이래요.”

그래?”

측정 장비가 변변치 않던 시대에도 공기의 질을 판단하는 방법은 있었다. 깊은 탄광에 들어가는 광부들이 필수적으로 챙기는 것이 카나리아 새가 들은 새장이었다.

막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콘크리트 같이 단단한 석탄 벽에 곡괭이질 하다보면 유독가스 농도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곡괭이질을 멈추고 쉴 때마다 곁에 걸어놓은 새장 안을 살폈다. 카나리아 눈동자가 명료하고 고개를 자유롭게 돌리면 아직은 안전했다. 괴로운 울음소리를 내거나 축 늘어지면 그 즉시 탄광에서 신속히 나와야 광부와 새가 함께 살아남는다.

나 어릴 적에도 황사현상이 있었다. 학교수업이 오전에 파한 어느 봄날, 낮잠을 자다가 깨나 밖을 보니 동이 트는 새벽인지 해 넘어가는 오후인지 한동안 분간을 못했다. 학교 갈 땐 줄로 착각하고 주섬주섬 준비를 하다가 누님에게 핀잔 들었던 황당한 경험이 있었다. 물론 자욱한 황사가 주범이었다.

철이 바뀔 때는 안개가 자주 꼈다. 보통 때보다 한참 짙게 낀 날은 재미가 최고 날이어서 아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날은 밤에는 맛볼 수 없는 대낮 숨바꼭질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 상대를 놓지는 이변이 속출했다. 공기와 미세한 물방울이 섞인 신선한 안개였다. 스모그란 용어는 내가 어른이 되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북극곰은 지구온난화현상과 전혀 무관한 동물이다. 이 죄 없는 흰곰이 사람을 대신해서 죽어가고 있다. 이 동물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진화하기까지 적어도 수십만 년 혹은 수백만 년 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터운 지방층을 없애고, 성근 모피 옷으로 갈아입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걸려야 할까? 북극곰이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걸 가정해서.

지구는 깨지기 쉬운 유리병 같은 행성이다. 돈벌이나 순간적 편리, 먹고 살기위해 마구 파헤치고, 대기 속이나 대양 속에 독약을 풀어 붓고 있다.

우리 손녀들 속눈썹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적어도 먹고, 마시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번 여름 폭염은 지구의 몸살 정도를 지나쳐 중병의 신음이 아니길 빈다.

sch-49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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