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정리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맘때쯤이면 전화할 사람이 집사람 말고 또 누가 있으랴 생각하며 전화를 받아보니 역시 아내였다. 날씨도 추운데, 콩나물국이 어떠냐고 하기에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콩나물 봉지를 들고 들어가는 길에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 준비할 때가 되면 찬거리 행상들 외치는 소리가 갑자기 고요했던 골목을 흔들어 놓는다.
“새우젓 사이쇼! 어리굴젓 사이쇼!”
“싱싱한 생선이요, 생서언!”
여기에 빼짐 없이 등장하는 행상을 고르라면 단연코 콩나물장수일 것이다. 그만큼 서민들의 주린 배를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는 식품으로 콩나물을 꼽는다 하겠다. 값에 비해서 영양가도 그만 아닌가?
어머니는 콩나물 값 아낀다며 자주 집에서 시루에 콩나물을 앉치셨다.
제일 먼저 콩나물 콩을 맑은 물에 넣고 불리셨다.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콩이 불려져서 껍질이 터질 때까지 담그셨다. 그리고는 시루 안팎을 깨끗이 해서 볕에 말리셨다.
“시루는 볕이 잘 드는 날에 내놔야 한다.”
“왜 햇볕에 말려야 하나요?”
“응, 그건 말이다, 균을 죽여주니까 필요한 거지,”
시루 바닥에 싸리나무 가지를 얼기설기 놓아 구멍에 빠지지 않게 한 뒤 깨끗이 빨아 말린 면 헝겁을 시루 안에 고루 펴셨다. 물이 반쯤 담긴 커다란 함지박 위에 Y자 모양의 나무를 걸치고 시루를 올려놓았다. 통통하게 부른 콩을 넣고 흰 보자기를 씌우면 준비는 끝나는 셈.
콩나물 키우는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마다 함지박에 떠있는 바가지로 물을 떠서 보자기를 벗긴 후 두세 번 끼얹으면 끝난다.
그러나 식구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골방에 콩나물시루가 놓여져 있기 때문에 ‘드나들 때마다’라는 너무나 쉬운 규칙이 쉽기 때문에 자주 깨지게 마련이다. 바깥에 나와 동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아차 콩나물’하는 생각이 들어 놀이를 멈추고 골방으로 뛰어 들어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가족 사이에 규칙을 지키려고 물을 꼬박꼬박 주었다. 좀 지나다보면 하루가 다르게 노란 콩나물 대가리를 치켜들고 키 자랑하듯 부쩍부쩍 커가는 콩나물이 너무나 탐스러워 더욱 물을 자주 주게 된다.
어느덧 말없이 커가는 콩나물과 어린 나 사이에 애정의 교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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