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슈퍼 주인이 신협 이사장으로 변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큰 목소리

주간시흥신문 | 기사입력 2008/10/13 [19:24]
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8/10/13 [19:24]
작은 슈퍼 주인이 신협 이사장으로 변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큰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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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상철 시흥신협이사장
“세상이 참 불공평한 게 많다. 할 수 있는 한 힘닿는데 까지 없는 사람들 도와주면서 살고 싶다.” 고 말하는 작은 미니 슈퍼 주인이 신용협동조합 이사장까지 된 양상철 신협이사장.

전라북도 남원의 아주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남원역에서 3킬로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는 정충마을이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형제들이나 주위 친척들이 우애가 좋았다. 아버지의 논이나 밭에 일을 하는 날에는 작은 아버지나 삼촌들이 다 모여서 일을 끝내고, 다른 형제 집으로 가서 일을 함께 하였다.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어려울 것 없이 형제나 친척들이 내일처럼 몸 가리지 않고 도우면서 살아서 우애 좋기로 소문난 집안의 장남이었다. 지금까지도 슈퍼를 하면서도 명절 때가 되면 지방에 사는 형제들도 명절 장으로 바쁜 슈퍼로 달려와 도와줄 정도로 우애가 좋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바로 옆 동네에 사는 고모네는 복숭아, 자두가 지천이어서 학교가 끝나면 과수원으로 달려가 과일을 따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는 양상철 이사장이다. 전라도 남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서울에서 중장비 운전을 하게 되었다. 중장비 운전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여긴 부모님은 만류를 하셨다. 부모님께선 대학을 가기를 바라시면서 굳이 대학을 안 가면 장사라도 하라도 하셨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하루빨리 내 일을 찾아 성공하고 싶어서 장사를 하겠다고 하였다.

1984년 20세 때 일이다. 중장비 운전을 그만두고 매형이 하는 슈퍼에서 일을 먼저 배우겠다고 시흥시 수암면으로 올라왔다. 매형 아래서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1년 후 1985년 12월에 현재 시흥시 목감동에 목감미니슈퍼를 개업 하여 장사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 논 여덟 마지기를 판돈 1300만원과 직장 다니면서 모아둔 돈 500만원이 장사하는데 종자돈이었다. 장사가 곧잘 되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명절 때마다 주위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유지인데 내 선물이 왜 빠졌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있는 사람이 더 무섭게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동사무소를 찾았다.

86년도 새마을 지도자가 되어서 명절 때마다 불우이웃돕기에 나섰다. 열심히 하다가 보니 목감동사무소 새마을회에서 총무로 위촉 받게 되었는데 전 총무에게 인수 받은 통장 잔액이 3만원이었다. 그런데 7-8년 후 통장 잔액이 2,700만원까지 저축을 하게 되었다. 그 돈이 모태가 되어서 지금까지 장학금 운영을 하고 있다. 목감동 새마을회에 몸담은 지 16년이 되었다. 지금도 명절이면 동사무소에 쌀 30포대 라면 50상자씩 보내주며 이웃과의 정을 나누고 있다.

동사무소에서 체육대회를 하면서 줄다리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줄다리기를 하다 보니 줄다리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돈 안 들고 전신온몸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시흥시에 대표선수를 구성하고 대만이나 미국엔 세계챔피언십 줄다리기 대회에 참여하여 전 국민에 관심을 끌기도 했으나 선수들이 아줌마들이다보니 화합이 쉽지 않고 대회를 한 번 다녀오면 선수생활을 그만 둬 선수를 꾸준히 키울 수 없는 것도 안타깝다. 시흥시줄다리기 연합회장으로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3번을 다녀오면서 줄다리기를 통해 시흥시를 세계적으로 알려야겠다는 강한 욕망이 갖고 있으며 우선 선수들을 모집해서 충분한 연습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시흥시를 줄다리기의 종주 시로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의 일은 미니슈퍼를 하면서 은행에 드나들게 되었고 신�O협동조합 조합원이었다가 이사가 된 후 3년이 지나서 2005년 주위에서 시흥시 시의원에 출마를 하라는 권유를 받고 신용협동조합 이사장에 출마를 할 것인지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신협 조합장에 출마하여 조합장에 당선 됐으며 그 때 내린 결정은 아주 잘 한 일이라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

미니슈퍼 사장이 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이 되는 일은 장사나 은행의 일이 같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슈퍼의 종업원들이 물건 물어다 주고 내어주는 게 은행의 이치와 꼭 맞기 때문이다. 이사장이 되고 나서 시흥시 주위 5개의 시에서 수신고가 제일 적었는데 1년 7개월 만에 수신고가 제일 많아졌다.
 
신협의 주요 고객은 노인들이었다. 작은 물고기가 모여서 큰물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은행원은 친절감이 있어야한다. 손님을 친절하게 맞이해서 손님을 끌자는 이론이다. 시흥의 신협은 여러 곳으로 산재되어있다. 회원은 1000여명이 된다. 늘상 직원들에게 신협돈을 내 돈 같이 써라. 남의 물건 쓸 때처럼 쓰지 말자. 는 말을 자주한다.

부인한테 미안하다. 부인은 누이가 하는 슈퍼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월급타서 한 푼도 갖다 주지 못하고 다 용돈으로 쓰고 있다. 신협일이며 동사무소 새마을회 일이며 줄다리기 일을 하다보면 한 달 애경사까지 300만원이 넘게 들기 때문이다. 부인은 집에 안 내놓아도 좋으니 좋은 일이나 많이 하고 살라고 한다. 부인한테는 아주 잘해주고 싶은데 밖에서는 여러 사람들과 상대를 하다 집에 들어가면 편안하게 안주하며 혼자 머리를 식히고 싶어진다. 그러다보니 아내에게 소홀해지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많다. 고 한다.

대화 도중에 고등학교 2학년 인 딸에게 전화가 왔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통화를 하는 모습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딸은 전화상으로 시험을 보았다며 시험문제를 몇 개 맞고 몇 개가 틀렸다고 아빠에게 보고를 한다. 딸과의 통화는 마치 연인과 통화라도 하듯 아주 자상하게 마음을 다하여 사랑을 주는 대화여서 듣는 이의 마음까지 흐믓하게 한다.

사람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간다. 서민들과 더불어 앞장서서 사는 게 목적이다. 돈이 많으면 돈 지키는 것도 힘들다. 먹고 살만큼만 있으면 된다. 세상이 참 불공평한 게 많다. 최소한 힘을 합하여 혼자만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고 세상 앞에 소리치고 있다. 앞으로 시흥신협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시흥시민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지역활동을 꾸준히 할 계획을 하고 있는 양상철 이사장은 지역에 귀중한 한 시민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력

목감동 새마을회 지도자 및 이사
시흥시 재향군인회 부회장
시흥시 생활 체육 줄다리기 연합회장
목감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시흥신협 이사장



<이연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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