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김용일
지붕으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운다는 뜻으로 일부러 파탄지경에 이른 것 처럼 보여 적에게 좋은 조건을 줌으로써 아군 깊숙이 들어오도록 유인한 다음 선두부대와 후위부대를 끊어 적의 주력부대를 헤어날 수 없는 사지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떠는 사다리를 치움으로써 되돌아갈 길이 없어졌기에 앞으로만 돌진하여 싸운다는 뜻으로 삼국지에서 유기가 제갈공명을 유인해 옥상으로 올라간 후 사다리를 치운 뒤 자신의 처세에 대해 물었다는데서 유래했다.
진시황이 죽고 호해가 진나라의 2대 황제에 오르자 전국이 시끄러워지고 곳곳에서 영웅호걸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중 옛 초나라의 후손인 항우가 초나라의 상장군에 봉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조나라에서 사자가 달려와 위급을 알렸다.
“거록성 북쪽에 진을 치고 있던 진여의 군사들 가운데 5천 명이 거록성을 구하러 갔다가 진나라 군사에게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연나라와 제나라 군사들이 저마다 구원을 와있으나 한결 같이 누벽을 높이 쌓고 틀어박혀 있을 뿐 진나라 군대와 싸울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초나라의 강병이 아니고는 아무도 조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해 줄 수 없을듯합니다.”
그때 거록성을 에워싸고 있던 것은 장함의 부장 왕리가 이끄는 10만의 진나라 군사였다. 그리고 다시 장군 소각과 섭간이 각기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거록 인근에 진세를 펼쳐 왕리의 뒤를 바쳐주었다. 장함은 따로 5만의군사를 이끌고 거록성밖 왕리의 진채에서 하수까지 양쪽에 흙담을 쌓아 길을 만들게 하여 이 길로 왕리에게 군량을 안전하게 운반해주었다.
군량이 넉넉해진 왕리는 더 한층 맹렬하게 거록성을 공격했다. 성안은 군사가 넉넉하지 않은데다 군량까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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