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제27계-가치부전(假痴不癲)-(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4/11/20 [14:4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11/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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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계-가치부전(假痴不癲)-(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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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부차는 자주 북벌군을 일으켜 노나라를 복속시키고 제나라를 공격했다. 그는 북벌을 위해 장강과 회하를 연결시키고 기수와 제수를 연결시켰다. 오나라의 수도 소주에서 배만타면 곧장 제나라에 닿을 수 있도록 운하를 굴착하는 대공사를 벌였다. 이 같은 공사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대공사로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에는 많은 민폐가 뒤따랐음이 분명하다.

오자서가 죽은 다음해 오왕 부차는 드디어 제나라를 공격했다. 이때 제나라에서는 포씨가 도공을 죽이고 나이 어린 간공을 왕으로 세웠을 때였는데 상대국의 국상을 틈타 공격하는 것은 오나라의 상투적인 전법이었지만 이 싸움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한편 오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하여 월나라 에서는 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게 했고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아내로 삼지 못하게 했다. 이는 튼튼하고 씩씩한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으며 또한 여자가 열일곱이 넘었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는 다던가 남자가 스무 살이 되었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당사자는 물론 부모까지 처벌했다. 여자는 해산이 임박하면 관가에 신고해야 했고 그러면 관가에서는 의원을 파견하여 아이를 낳는데 지장이 없도록 돌보아주었다. 아들을 낳으면 산부에게 슬 한 병과 개 한 마리를 잡아 주었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술 한 병에 돼지 한 마리를 주어 산부를 보양시켜 주었다.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에서 유모를 보내 주었고 쌍둥이를 낳으면 양식을 보태 주었다. 적자가 죽으면 그 집은 3년 동안 부역을 면제해 주었고 서자가 죽으면 석 달 동안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B.C 482년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자결하게 하고 패공이 되기 위해 여러 제후들을 황지에 모이게 한 후 억지로 패공으로 인정받았다. 이틈에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침공하자 합려는 황급히 돌아와 대적했지만 패하여 화평을 맺었다.

B.C 473년(오왕 부차 23년, 월왕 구천24년) 드디어 월나라는 대규모의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침공하여 연전연승하자 오왕 부차는 자살하고 오나라는 멸망했다. 전쟁에 승리한 월왕 구천은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시를 후궁으로 삼자 범려는 ‘숲 속의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 지는 법.’이라는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오나라를 멸망시켜 깊은 인상을 남긴 월왕 구천은 춘추시대 마지막 패공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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