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왕 구천은 회계에서 있었던 굴욕을 씻기 위해서 쓸개를 맛보면서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와 화평을 맺은 지 5년 후에 군대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공격해 크게 이기고 추, 노를 멸망시키고 돌아왔다.
4년 뒤 오왕이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자 구천은 자기의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돕는 한편 귀중한 보물을 백비에게 뇌물로 바치고 월나라의 미녀 서시를 오왕에게 바쳐 환심을사고 구천이 친히 오왕을 알현하여 몸을 굽히는 등 적극적인 선심 공작을 펴 오왕의 경계심을 늦추도록 하자 오자서가 간했다.
“만약 제나라를 쳐서 깨뜨린다 해도 그것은 마치 돌밭과 같은 것이어서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제나라를 치는 일을 중지하고 먼저 월나라를 쳐 없애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왕은 듣지 않고 오자서를 사자로 삼아 제나라에 가도록 명했다.
오자서는 제나라로 떠나면서 그의 아들에게 “내가 여러 번 간했으나 왕은 듣지 않는다. 이제 오나라가 망하는 것은 뻔한 일인데 네가 오나라와 함께 죽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하며 그의 아들을 제나라에 데려가 포씨에게 맡기고 돌아왔다.
오나라의 태제 백비는 오자서와 오래 전부터 사이가 나빴는데 아들을 제나라에 두고 온 것을 보고 오왕에게 아들까지 제나라에 맡기고 온 것을 보면 오자서가 배반할 뜻이 있는 것 같다고 참소하니 오왕은 백비의 말만 믿고
“그대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의심하고 있었소.”하고 사자를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지검’을 주며 자결을 명했다.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집안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했다.
“반드시 나의 무덤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오와 부차)의 관을 만들 수 있게 하라. 그리고 나의 눈을 빼내 오나라의 동쪽 문 위에 걸어놓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하라.”하고 자결했다. 오왕 부차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가져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 강물에 띄워 버리니 오나라 사람들이 가엽게 여겨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서산이라고 이름 지었다.
/편집위원장 김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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