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계 - 지상매괴(指桑罵槐)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4/10/19 [18:56]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10/19 [18:56]
제26계 - 지상매괴(指桑罵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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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다는 뜻으로 간접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꾸짖는 수법을 말한다.

양영대군은 1394년(태조 3)에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양녕을 얻기 전에 태종과 민비는 이미 3명의 아들을 얻었으나 모두 병으로 요절했다. 이런 일을 겪은 태종은 양녕대군이 태어나자 또 큰 일이 일어날까봐 처가에서 기르도록 했다.

이에 양녕은 어린 시절을 외할아버지 민제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1404년(태종 4) 태종의 적장자로 11세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양녕대군은 세자로 책봉 된 후 무수한 기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공부는 아예 무시하고 활쏘기를 즐기거나 한밤중에 궁궐을 빠져나가 기생과 놀아나기 일쑤였다.

세자의 이런 파행은 그를 직접 벌 할 수 없었기에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가 가까이 했던 하층민들과 여인들 그리고 내시들이 세자대신 귀양을 가거나 죽는 등의 벌을 받았다. 이른바 지상매괴의 계에 의한 것이었다.

세자의 파행은 외척의 득세를 근심하던 태종의 우려를 더욱 자극해 기가 센 부인과 기세등등한 처남들이 세자를 끼고 권세를 농단할까 근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태종이 병이 들어 세자에게 양위한다는 명을 내리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를 환영했다는 트집을 잡아 태종은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이후 세자는 궁밖의 수많은 여성들과 놀아나면서 더욱 기행을 일삼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반성문을 쓰고 잘못을 뉘우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곽선의 첩 어리에게 빠져 아이까지 출생하고 말았다. 이를 안 태종은 노발대발하여 어리를 내쫓자 어리를 잊지 못한 양녕은 그의 장인 김한로에게 부탁하여 몰래 어리를 궁으로 들이고 말았다.
 
그러나 이일이 태종에게 발각되면서 사태는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태종은 김한로에게 세자에게 아부하면서 권세를 휘두르려 한다고 의심하고 세자를 바른길로 인도해야할 장인의 입장에서 세자가 하라는대로 따라한 것은 크나큰 불충이라고 해 유배에 처하고 세자는 궁에서 나가 근신하라고 명했다.
 
/편집위원장 김 용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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