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계 - 가도벌괵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4/09/06 [14:2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09/06 [14:25]
제24계 - 가도벌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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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벌괵
 
길을 빌려 괵나라를 정벌한다는 뜻으로 약한 상대는 명분만으로 제압한다는 말이다.

그 유래는 춘추시대 진(晉)나라 19대 임금인 헌공(BC 676~651년, 나중 여희에 빠져 실정을 거듭하는 인물)이 이웃해 있는 작은 나라들인 우나라와 괵나라를 점령하고자 했지만, 만약 공격을 하게 되면 국경을 접해있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대항할 경우 때문에 골치 아파 하고 있었다.

이때 진나라 대부 순식이 계책을 내어 헌공에게 진언했다. 우(虞)나라 우공에게 길을 빌려 괵 나라를 정벌한 후,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공격하여 합병해버리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욕심 많은 우공의 성품을 이용하여 진나라 최고의 보물 2가지를 보내 환심을 얻은 후 진나라는 단지 괵나라 만을 공격하려고 하니 군사가 지나가는 길만 좀 빌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진나라의 속셈을 아는 충신 궁지기와 백리해가 극구 반대했다. 이들은 ‘괵나라와 우나라는 같은 처지인데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필히 망할 것이다. 속담에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말도 있다’면서 강력하게 막았다.

그러나 우둔한데다 욕심에 눈이 먼 우공은 중신들의 간언을 물리치고 군사까지 지원하며 길을 빌려주었다.
 
이후 진나라는 괵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킨 다음에 돌아오는 길에 길을 빌려준 우나라마저 공략하여 진나라에 편입해 버렸다. 물론 진나라가 일찌기 우공에게 주었던 보물들도 고스란히 그대로 되찾았음은 물론이다.

1592년(선조 25) 4월 왜군이 부산으로 상륙하여 자신들은 조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이 없고 다만 명나라를 치기 위함이니 길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당시 대국으로 섬기는 명나라를 치러가기 위한다는 왜군을 위해 길을 빌려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도벌괵이라는 고사를 잘 알고 있기에 절대 길을 내줄 수가 없었기에 전쟁은 필연이었다.

명나라에서도 만주족과의 대치상황이 계속되었기에 군대를 파견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만약에 조선이 무너지면 그 다음의 전쟁터는 자국이 되기에 할 수 없이 군대를 파견하여 왜군과 싸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임진왜란은 조선과 명나라에 깊은 상처를 남기어 그 이후로 조선은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명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마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위원장 김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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