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병법 36계 제21계 -금선탈각(金蟬脫殼) (2)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4/07/04 [15:15]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07/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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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 36계 제21계 -금선탈각(金蟬脫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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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수레나스는 파르티아의 전통적인 주요전력인 중무장 기병까지 아르메니아에 쳐들어가는 왕에게 맡겨버려 자신에게는 활을 무기로 삼는 경무장 기병뿐이었다. 경무장 기병은 화살을 다 쏘아버린 다음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비전투원이 되기에 수레나스는 1천 마리의 낙타에 화살을 산더미처럼 쌓아서 동행하고 활을 개량해 로마 활보다 세배나 더 멀리 나가도록 했다. 그런 다음 1만기의 경무장 기병대를 거느리고 크라수스를 기다렸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300km도 채 가기 전에 적군이 모래언덕 위에 모습을 나타내자 적의 출현을 목격한 크라수스는 당장 진형을 폈다.

로마군의 궁병은 주력부대가 아니라 전투 초기에 화살을 쏘아 기세를 꺾는 역할에 불과하고 사정거리도 기껏해야 50m 정도밖에 안 되는데 비해 파르티아 기병의 화살은 아군의 화살이 미치지 않는 거리에서 정확하게 화살을 쏘아왔다. 게다가 로마 병사들은 잠시만 참으면 화살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화살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불안해졌다 이 불안이 로마군의 정사각형 진영을 무너뜨렸다.

이렇게 되자 전투의 주도권은 파르티아 쪽으로 넘어가 이들은 말을 타고 사막을 질주하며 로마군 병사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보병보다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들도 손을 쓰지 못했다. 기병들의 무기는 창과 칼로 접근하지 않는 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크라수스는 우익을 지키는 아들에게 기병 2천기를 이끌고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수레나스는 로마 기병이 공세로 나오자 퇴각으로 위장한 후퇴를 교묘하게 해서 청년 크라수스는 자신도 모르게 파르티아군 기병 1만 명에게 포위되어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속에 로마 기병은 전멸하고 산채로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한 청년 크라수스는 자결했다. 파르티아의 퇴각으로 한숨 돌린 로마군 진영에 젊은 크라수스의 목이 던져지자 로마군은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혔다. 이에 보좌관들은 크라수스의 승인을 겨우 얻어 한밤중에 퇴각을 명령했다.

기원전 53년 6월12일 퇴각을 하던 로마군에 1만기에 달하는 적이 나타나자 크라수스는 가까운 언덕으로 피신했다. 파르티아 기병대는 크라수스가 피신해 있는 언덕을 포위하고 포로로 잡은 로마 병사 몇 명을 풀어주면서 자기의 목적은 총사령관을 생포하는 것이고 만약 그를 넘겨주면 나머지 로마 병사들은 자유가 될 거라고 전하게 했다. 로마군 병사들이 크라수스에게 회담에 나가라고 요구하자 크라수스는 만약 자기가 죽더라도 그것은 적의 속임수 때문이지 아군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말을 참모들에게 남기고 적을 향해 걸어갔다. 옥타비아누스는 총사령관을 혼자 보낼 마음이 나지 않아서 장교들을 데리고 그 뒤를 따랐다.

수레나스는 크라수스를 정중히 맞이하고 이런 자리는 강화를 교섭하기가 어려우니 강가에 따로 마련 된 장소로 함께 말을 타고 가자고 한 다음 마부를 시켜 말을 끌고 오게 했는데 말이 한 마리뿐인 것을 알고 옥타비아누스가 마부를 칼로 찔러 죽이자 그 자리에서 충돌이 일어나 크라수스와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따라간 장교 모두 전사했다.

지휘관을 잃어버린 로마군은 도주한 몇 명을 빼고는 모두 포로가 되었고 삼두정치의 일원이고 로마제일의 부호이며 로마 경제계의 대표 격이었던 크라수스는 이렇게 해서 61세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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