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수찬이 엄마는 수찬이를 깨운다. 수찬이는 어제 학원에서 12시에 마치고 1시경에 취침을 한 상태다. 중3인 수찬이는 3년뒤 일류대학을 가기위해 고3처럼 공부에 매여 있다. 모처럼 한가한 휴일 저녁 가족들 간에 때 아닌 입시문제, 진학문제로 옥신각신이다.
중견회사 과장인 수찬이 아빠는 학원비 등 사교육비 부담으로 아내가 식당일을 하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 결코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교평준화 찬ㆍ반진영의 설전이 되풀이되고 있다. 교육부가 ‘평준화· 비평준화 지역 간 학력 성취도 비교분석 결과’를 통해 ‘하향평준화’ 주장이 근거 없음을 밝히자 평준화 반대론 측이 신뢰도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고교평준화정책은 2001년 한국교육개발연구원(KDI) 등의 경제 전문가들이 해체논의에 가담하면서 해마다 격렬한 논란에 휩쓸려왔다. 평준화해체 주장의 최종 지점인 고교입시 부활은 교육적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고교입시의 부활이 불가능한 것은 1974년 평준화정책 도입 당시로 되돌아가 보면 자명해진다.
당시 고입경쟁은 교육적으로 중학생의 정신· 신체의 전인적 성장저해와 중학교육의 파행화, 고등학교 간 교육격차 심화라는 문제를 불렀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재수생의 누적과 과열과외, 학생인구의 도시집중 등 부작용이 극도에 달했다. 평준화정책은 크게 이런 여섯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평준화 해체 주장은 우리가 이 시점에서 이런 문제들을 또다시 안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명문고 진학을 위해 중학생이 집을 떠나고 재수를 불사하며 중학교실이 입시학원화 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몇몇 명문고 이외의 대다수 고교생들이 10대 때부터 2류 인생, 3류 인생의 딱지를 붙이고 좌절과 고통 속에 거리를 방황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과외에 쏟아 붓는 사교육비 부담은 필연 중학과정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대입시를 겨냥한 특목고 과외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오늘의 상황을 비춰보면 된다.
또한, 고교입시를 부활시킨 평준화 해체 논리가 중학교 입시, 초등학교 입시로까지 확대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학업성취도가 비슷한 학생끼리 가르칠 때의 수업 효율성이야 고교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 땅의 청소년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과외와 입시의 지옥에 놓이게 된다. 예전에 여섯 살 어린이가 사립초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울고 나오던 신문사진의 기억은 다시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주로 경제전문가들이 평준화를 공격하지만, 평준화를 해체했을 때 교육양극화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비용의 문제는 왜 고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교육비를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는 유럽 국가들은 그렇다 치고, 자유주의의 첨병인 미국조차 평준화를 고교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은 고교교육이 국가의 존립기반인 국민통합의 기초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평준화 반대론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조건적인 ‘평준화 끌어내리기’보다는 이런 문제의 대안 마련에 나서는 일일 것이다. 선지원후추첨제, 자립형 사립고, 계약학교, 외국학교 등 많은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소모적인 평준화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다양한 제도들을 어떻게 교육적 기능을 살리며 정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현재 경기도 지역에서 고교평준화가 실시되고 있지 않는 지역이 시흥, 안산, 광명뿐이다. 안산과 광명은 현재 고교평준화 문제를 공론화하여 지역에서 현안으로 다루고 추진하고 있지만, 시흥은 공론화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역이 되어 활동할 21세기는 정보화·세계화·인간화·다원화 시대로서 다원적이고 창의적이며 협동적인 건전한 도덕의식을 갖춘 민주시민이 요구된다고 한다. 입시제도 때문에 학생들의 개성 및 창의성과 협동성 그리고 건전한 도덕의식의 함양이 그르치게 되지 않도록 우리 기성세대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시흥도 하루빨리 고교평준화의 공론화가 필요한 것이다.
/ 주간시흥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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