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병법 36계 제16계 - 욕금고종(欲擒故縱) (17)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4/02/24 [10:49]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4/02/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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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 36계 제16계 - 욕금고종(欲擒故縱)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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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기원전 49년 4월1일 로마에서는 원로원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집정관이 둘 다 폼페이우스와 함께 도망치는 바람에 수도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카이사르는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면서 아버지를 거역하고 카이사르에게 달려온 젊은이들에게 이 임무를 맡겼다.

다만 내정이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법무관 레피두스에게 맡겼다. 레피두스에게 주어진 임무는 군사력을 등에 업지 않고 본국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국방책임자로는 호민관 안토니우스를 임명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병립하는 형태로 호민관 안토니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안토니우스와 돌라벨라에게 아드리아 해의 제해권을 빼앗는 임무를 맡겼다.

이런 처리를 한 뒤 4월 7일 육로를 따라 에스파냐로 떠나 마르세유에 4월19일에 도착했다. 카이사르는 마르세유가 항구도시인 만큼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로마군단의 기술력을 발휘해 육지 쪽 포위망을 만드는데 보름이 걸렸다. 그 동안 가까운 아를에서는 바다 쪽에서 공격하는데 필요한 배 12척이 만들어졌다. 공격준비가 끝난 5월 4일 마르세유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이를 안 폼페이우스도 에노발부스를 사령관으로 하는 지원군을 마르세유에 보냈다.

마르세유 공방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카이사르는 에스파냐에서 폼페이우스군과 대결하는 것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여 트레보니우스 휘하의 3개 군단을 마르세이유에 남겨 놓고 카이사르 자신은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3개 군단과 기병 900기를 이끌고 마르세유를 떠나 서쪽으로 향해 6월 22일 파비우스가 지휘하는 3개 군단과 합류했다. 카이사르는 마르세유 문제만 아니었으면 9개 군단으로 조기에 전투를 끝낼 작정이었지만 마르세유에 3개 군단을 두고 오는 바람에 6개 군단 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에스파냐에 있는 양군의 전력을 보면 폼페이우스 진영은 5개 군단 3만 명의 중무장 보병과 현지 병력 4만8천명 합계 7만8천명의 보병과 5천의 기병을 아프라니우스와 페트레이우스가 지휘를 맡았고 카이사르 진영은 6개 군단 2만7천명의 중무장 보병과 기병 3천이었다.

레리다에서 카이사르를 맞아 싸울 아프라니우스와 페트레이우스는 9만 명에 가까운 전력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레리다에서 남쪽으로 1km쯤 떨어진 고지대에 진영을 세우고 카이사르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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