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에 있는 슈퍼에서 시장기 면하려고 라면하나 사들고 나오려는데 슈퍼할머니께서 묻는다. ’밭에 일하러 나왔구먼‘ ’네 밭에서 일해요‘ 답하고 까매진 오른 손등을 내려 다 보았다. -정은경화백의 작업노트 중
시청갤러리에서는 자주 전시회가 진행된다. 오랜만에 시청 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갔다가 늘상 눈에 익은 시흥의 곳곳이 한국화로 화폭에 옯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화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정은경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경찰차가 지나가면서 하는 방송이 다른 곳과는 달라요. ‘얘들아 가생이로 가라’는 말이 얼마나 정겨운 경찰의 모습인지 기억이 선명해요.”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유년의 추억을 자연과 어우러져 느끼게 하고 싶어 부천에서 시흥으로 옮겼다.
처음 시흥에 왔을 땐 우리 마을이 왜 다른 동의 주민자치센터를 이용해야 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고 더불어 교통이 너무 열악했다고 전하는 정화백은 그런 반면 유흥업소는 아예 존재하지 않고 9~10시면 모두 자는 분위기여서 아이들 키우기는 정말 좋은 곳이라고 전한다.
환경적이면서 자연과 어울어진 시흥의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어서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살만한 멋진 동네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은 70~80 어르신들도 다 운전을 하는 시대인데 아직 운전을 못한다는 정화백은 그러나 그런 덕분에 직접 발로 시흥의 곳곳을 누비며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다.
스스로를 기계치, 이름치라 이르는 정화백은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나면 현장에서 바로 화폭을 펼치고 몇 시간이고 앉아 그 풍경을 바로 한국화로 담아낸다.
현장에서 화폭에 담아오면 디테일하게 다듬기까지 약 3일정도면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겨울이 채 지나 마지막 눈 오는날을 화폭에 담아낸 ‘신현겨울-미산'이라고 한다. 40분 만에 완성 했는데 눈이 쌓이면서 좀 있으니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해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그래서 바로 화폭에 담았는데 빨리 완성하기도 했고 마음이 간다고 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전시회를 둘러보는 내내 그림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세심한 손길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시흥 곳곳의 그리 낮설지 않은 풍경속에도 저곳이 어딜까? 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덕분에 다리 품은 좀 팔았지만 시흥에서 절대각이 나오는 맘에 드는 곳이 너무 많단다.
“얼마 전 전시했던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서 20대 관람객이 많이 찾아와 이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사실 수묵화로 관람객의 눈길 잡기가 어려운데 ‘모던하다’는 평을 들었다. 충분한 해설을 담았더니 그것을 계기로 작가(사생팀)들이 시흥을 다녀가 시흥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약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걸친 전시회가 시흥백년팀과 취지가 맞아 떨어지게 되어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다른 분들보다 제가 손이 좀 빨라요. 그러다보니 손목에 늘 파스를 붙이고 살아요.” 그렇게 현장사생 작가이다 보니 전시회 중간 틈이 날 때 마다 부채에 한국화로 담아내 전시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아쉬움을 전한다. 시흥이 아직은 작품에서처럼 깔끔하지가 않다. 즉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다. 처음 이사와 걸어 다니면서 자세히 돌아보면 의자나 가구 등 대형폐기물이 버려져 있었다.
정화백은 “화폭에 담는 절대각에 ‘쓰레기만 빼고 그리면 되요’ 라고 전할 수는 없잖아요? 시흥시 미술협회 ‘사생회’ 회원들이 걸어 다니면서 의견을 전달해 쓰레기가 치워지기도 해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버리기 쉽고 또한 관리, 감시가 어렵지만 같이 해결해 나가야할 숙제인것 같아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정은경화백과의 유쾌한 인터뷰는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화전시관 해설경력과 도슨트 경력답게 동양화에서 한국화의 이름을 얻기까지, 우리나라 재료인 먹과 종이, 서양화가 주류를 이루는 미술사적 문제까지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정은경화백의 한국화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시흥의 사랑을 엿 볼 수 있었다.
/박미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