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진금속공업, 자동차용 볼트 제조 선두주자로 우뚝

만년 적자를 흑자로 바꿔낸 서병일 대표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3/07/08 [14:46]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3/07/08 [14:46]
(주)광진금속공업, 자동차용 볼트 제조 선두주자로 우뚝
만년 적자를 흑자로 바꿔낸 서병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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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진금속공업 대표 서 병 일     © 주간시흥
 
자동차용 특수 볼트를 전문으로 하는 (주)광진금속공업 서병일 대표는 특수 볼트의 정밀도  만큼이나 매우 정확하고 정직함을 인정받고 있는 사업가이다.

오직 볼트제조에만 40여년을 몸담아오면서 국내 주요 자동차업계에서는 서병일 대표의 특수용도 볼트에 대해서는 그 기술력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주)광진금속공업의 자동차용 특수 볼트에 관해서는 용도에 맞는 품질의 볼트를 만드는 기술력이 국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주)광진금속공업은 최근 그동안에 사용하던 공장에서 더욱 넓은 공간의 공장을 인수하여 공장이전을 마치고 제2의 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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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장을 옮기게 되는 것은 그동안 어려웠던 회사운영이 수년간의 고생 끝에 경영상태가 개선되고 주문량이 많아지면서 공장이 비좁게 되어 더욱 큰 공간이 불가피한 상황에 까지 이르러 최근 적절한 공장을 인수하여 이전 하게 된 것이다.

경북영주에서 쌀가게를 하시는 부모 밑에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서병일 대표는 학창시절 비교적 공부를 잘 한 편으로 당시 예비고사를 치러야 대학 진학에 자격이 부여되던 예비고사 시행 1기로 시골학교에서는 쉽지 않은 예비고사를 통과하면서 서울로 유학을 와 경희대 기계과에 입학했다.

병역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는 취업도 쉽지 않았던 시절인 1973년 대학교를 졸업했으나 당시 나이가 잘못되는 바람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부모님께서 하시던 쌀가게를 도우며 1년의 기간을 보낸 후에야 군대에 입대할 수 있었다.

기계과를 전공해 부산에 있는 방공포대(미사일 부대)로 발령받아 비교적 재미있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1976년 전역한 서병일 대표는 이듬해 2월 인천에 있는 프레스 등 산업기계 제작업체에 입사해 자신의 전공분야인 기계파트를 맡아 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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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이 강했던 서병일 대표는 발주업체에 기계를 제작해 납품했으나 제작과정에서 결정적인 대형 불량이 발생하면서 심각한 크레임을 당해야 할 상황발생 됐으며 이때 납품업체 부장과의 대책회의에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인연이 되어 자동차 볼트 전문업체에 스카우트되어 이때부터 볼트의 정밀가공관련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품질관리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사내 기술 개발이나 제품 품질을 책임지며 문제가 발생 시 해결하는 일들을 전문적으로 맡았던  서 대표는 국내 주요 자동차 업체 개발에 참여하여 볼트 부품의 개발 및 품질관리를 책임졌으며 한국산 자동차의 첫 수출품개발에 동참했던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회사의 품질관리 책임자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별 어려움 없이 지냈던 서병일 대표에게 아이들이 커가고 모친까지 모셔야 되는 상황이 되자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다.

회사 측의 봉급 인상 등을 기대했으나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건축용 볼트를 주 아이템으로 하는 회사로 이직하게 됐으며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서병일 대표는 ISO국제규격 인증 등의 업무를 비롯해 맡은 일을 충실히 해 나가는 직장인으로 생활을 계속해 왔다.

그러던 서병일 대표에게 2003년 큰 변화와 함께 기회가 찾아왔다.

서병일 대표가 볼트업체 근무 당시 금형 책임자가 운영했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회사운영을 맡아 줄 것을 제안해와 오랜 고민 끝에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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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사가 워낙 어려웠으며 당시 꼭 필요했던 인증마크들을 취득하지 못한 상황으로 주요 거래처였던 자동차 업체에 납품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매출이 60%이하로 급격히 떨어지면서 최악의 경영상황으로 전개 됐다.

경영 참여 1년도 채 되지 못해 결국 결별하기로 하고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인수하여 2004년 1인 경영체계로 독자 경영을 시작했다.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온힘을 쏟았으나 힘든 상황은 계속됐으며 쉽게 개선되지도 못하고 매월 1천만 원 이상의 적자가 계속해서 발생했으나 당시 회사 소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은행 융자한도가 높아져 은행의 융자를 통해 적자를 메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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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동안 적자가 지속 됐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비교적 마진이 적은 다량생산을 피하고 이익이 많은 소량 다품종의 볼트생산에 집중해 소량생산에 적절한 생산 체계를 만들며 금형 등 설비교체 시간을 간소화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조금씩 매출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2006년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으며 기아자동차의 품질 인증 규격인 SQ인증을 획득하고 주 거래처는 물론 자동차 업체, 전기 업체 등 거래 업체도 다양화되었다.

서서히 안정적인 경영상황을 맞이하게 된 (주)광진금속공업 서병일 대표는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회사의 생산 구조를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도록 개선하고 금형이나 기계설치 등의 시간을 줄이며 적은 인원이 많은 기계를 운전할 수 있도록 가공공정개선 및 가공 공정자동화 등에 집중적인 연구와 투자를 계속했다.

또한 원가절감을 극대화함으로써 수익성이 좋아지고 회사는 지속적인 신장을 계속하며 이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안정적인 회사로 만들어 졌다.

서병일 대표는 “그동안 어렵게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과의 화합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며  “2004년 이후 2명의 신입사원외에는 인원 변동 없이 능률적인 회사운영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며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원칙을 기본으로 기술력을 키우고 신뢰와 믿음으로 업체와의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주)광진금속공업 서서병일 대표의 마음은 바쁘다.              

빨리 공장을 안정시켜 생산 활동이 계속 이어져야 주 발주처인 자동차업체의 생산에 차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새로 개발한 아이템이 발주회사에 주 아이템으로 적용 되면서 서서히 공급 비율을 늘여나가고 있어 빠른 시간 내에 교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매출 신장도 크게 기대되고 있다고 한다.

서병일 대표는 휴일에는 어김없이 부인과 함께 30년 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인생에 조언을 해주고 있는 스님이 계신 문막의 모 사찰에 가서 생활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며 편안한 인생을 즐기고 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생철학을 갖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주)광진금속공업의 서병일 대표는 앞으로 더욱 발전되는 모습으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갈 것으로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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