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원래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는 말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더라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보여 적이 의심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은밀히 내일을 도모하여 드러난 모습에 계략을 숨기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정관 18년(644) 당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결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즈음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한 다음 동생인 보장왕을 왕으로 세우고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하여 신라에서 당나라로 공물을 보내는 길을 차단하고 당나라에 입조하는 것조차 방해하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하며 원병을 요청했다.
정관 19년(655) 당태종은 낙양을 출발하여 하북에 이르러 전군에 진군 명령을 내려 30만 대군과 함께 고구려와의 실질적인 경계선인 요하에 도달했다.
그런데 요하에 도착한 당태종은 요하를 건널 생각을 안 하는 것 이었다. 그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 요하강은 파도가 치고 소용돌이까지 쳐서인지 아니면 강을 건너면 적지인 고구려 영토라 고구려와의 싸움이 걱정이 돼서인지 도무지 강을 건널 생각을 안 하는 것 이었다.
▲삽화 : 신라와 당나라 연합인 나당연합과 고구려와의 전투 © 주간시흥 | |
이것을 본 고구려 원정군사령관 장사귀가 설인귀에게 말했다. “폐하가 강을 보고 겁을 먹었는지 건널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하자 설인귀는 “알았네 내가 어떻게 해보지” 하고나서 거대한 배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집을 지어 당태종에게 육지라고 속인 후 잔치를 하며 강을 건넜다는데서 만천과해라는 말이 유래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를 살펴보자. 북해 태수 공융이 황건적에게 포위되자 공융은 태사자에게 포위망을 뚫고 원병을 청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원병을 청하기 위해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태사자는 만천과해의 계를 사용하기로 하고 활과 과녁을 두 병사에게 들린 다음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안에 있는 군사나 성 밖에 있는 적병들이나 모두 깜짝 놀랐다.
그러나 태사자는 태연히 말을 끌고 성 가까이에 있는 언덕에 과녁을 세우고 활쏘기 연습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습이 끝나자 그는 다시 성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그의 활쏘기가 계속되자 성 밖에 있는 적병들은 그것을 구경하는 자도 있고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태사자는 변함없이 연일 활쏘기를 계속했다. 적들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때를 틈타 태사자는 갑자기 말위에 올라 비호처럼 적의 포위망을 뚫고 사라졌다. 적들이 속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그가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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