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여태후 (8)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1/11/01 [17:40]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1/11/01 [17:40]
중국여인열전 - 여태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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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유우를 조왕으로 임명한 뒤 여태후는 여씨 일족의 딸을 유우에게 주어 그를 자신의 일족으로 묶어두려 했다. 그러나 유우는 여태후를 적대시했다.

유우가 여태후를 적대시한 것은 형제인 조왕 여의가 살해되고 제왕 유비도 하마터면 살해 될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전권으로 황족인 유씨들은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었고 여씨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여태후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유우는 왕비로 보내진 여씨를 사랑하지 않고 박대하기만 했다. 여씨는 이것을 원망하여 여태후에게 조왕 유우를 고자질했다.
“조왕이 말하기를 여씨들이 어찌 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내 여태후가 죽으면 기필코 이들을 쳐 없애고 말테다.”라고 말한다고 고해 바쳤다.

이즈음 여태후는 여씨 일족들을 왕으로 세우고 있었다. 이는 유씨가 아닌 사람은 왕으로 세우지 말라는 고조의 유훈을 어겼기 때문에 유우는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씨의 고자질을 들은 여태후는 조왕 유우를 장안으로 불러들여 감금하고 “이 자에게 절대 음식을 주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 유우는 그 자리에서 굶어 죽고 말았다.

유우가 죽자 공석이 된 조왕에는 양왕 유회를 세웠으며 양왕의 자리에는 여태후 오빠의 손자인 여산을 세웠다.
새로 조왕이 된 유회는 여씨 일족 여인들의 성화에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본의 아니게 여산의 딸을 왕후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조왕은 그녀가 어마어마한 동족의 가신들을 데리고 조나라에 들어오자 어안이 벙벙했다. 마치 자신을 감시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유회에게는 전부터 총애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왕후가 그 여인을 독살해버렸다. 그러자 그는 울분을 참다못해 정신착란을 일으켜 마침내 자살하고 말았다.

조왕이 되었던 세 사람의 유씨는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마쳤다. 유여는 독살 당하고, 유우는 유폐되었다가 굶어 죽고, 유희는 자살했다.
여태후의 아들인 혜제는 제위 하는 동안 완전히 허수아비였다. 혜제의 황후는 그의 누이인 노원공주의 딸로 생질녀 조카를 정처로 맞이한 셈이어서 성은 장이지만 사실상 여씨 일족과 다름없었으나 이들 부부 사이에서는 한 사람의 자녀도 태어나지 않았다.

병약한 혜제가 죽고 난 후의 일을 걱정한 여태후는 후궁이 낳은 아들을 혜제 부부가 낳은 것처럼 꾸며 기르면서 이 황자를 낳은 여인의 입을 막기 위해 무참히 살해했다.

혜제가 죽자 혜제 부부가 낳은 아이로 꾸민 아들이 즉위하니 이이가 곧 소제이다. 소제의 황후로는 여태후의 둘째 오빠의 아들 여록의 딸로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황후로 내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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