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10/20 [00:58]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10/20 [00:58]
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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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 (1)




김용일 편집위원장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 총성이 울림으로써 인류 최대 비극의 하나인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올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세르비아 독립운동에 가담한 어느 대학생이 쏜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후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 뒤를 이어 도이치 제국이 전쟁에 뛰어들었으며 이들에 대항해 프랑스, 영국, 러시아가 선전포고를 해 전 유럽대륙이 전쟁에 휩싸여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1천만 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낸 이 참혹한 전쟁은 세계를 무대로 식민지를 넓혀가던 제국주의 열강들이 늙고 허약해진 과거 대제국의 영토에 진출하기 위한 제국주의자간의 충돌이었다.

1900년 초 세계정세는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에 진출하여 자기들 멋대로 식민지로 삼고 더 이상 진출할 곳이 없어지자 동유럽과 중동을 차지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만 트루크 제국의 영토의 영토를 넘보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1871년에야 통일을 이룬 도이치 제국이나 1870년에 통일 된 이탈리아 왕국은 새로운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했지만 이미 다른 나라들이 다 차지해버려 더 이상 진출할 곳이 없었다.

또한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발칸반도의 슬라브민족을 규합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 했기 때문에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서로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결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3국 협상을 맺어 동맹관계에 있었고 도이치 제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가 3국 동맹을 맺어 이 두 세력은 한판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전쟁이 무려 5년이나 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며 비행기와 탱크 등 첨단무기와 대량살상무기가 등장한 이 전쟁은 과거 다른 전쟁과는 다른 대량학살전쟁으로 독가스 화학무기까지 투입된 잔인하고 참혹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이 일어날 당시 미국의 상황은 19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분열되는 바람에 민주당 후보인 우드로 윌슨이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부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공화당의 분열로 의회까지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윌슨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상원과 하원의 지원까지 얻음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를 세계에 뿌리 내린다는 ‘새로운 자유’ 이념을 소신껏 펼칠 수 있었다.

그는 이상주의자였고 새롭게 떠오른 강대국 미국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지도자로 기업가편에 서있는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은 서민과 노동자를 보호한다고 했지만 윌슨은 결코 노동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대통령도 아니었고 대중적 인기를 경멸하는 귀족적 대통령이었다.

그는 인종이 섞여서는 안 되고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여성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데에는 반대했지만 민주주의 이념을 세계에 전파하는 게 미국의 숭고한 의무라고 굳게 믿어 중남미 내정문제에 깊이 관여하여 주권침해로 인한 반미감정을 유발시킨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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