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정착지 제임스 타운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0/03/22 [13:51]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0/03/22 [13:51]
영국인 정착지 제임스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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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주간시흥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의 신대륙 진출은 봇물을 이루어 1513년 발보아는 지금의 파나마를 가로질러 최초로 태평양에 진출했고 포르투갈의 카브랄은 1500년에 지금의 브라질을 발견했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뉴스는 곧바로 영국에도 전해져 당시의 영국왕 헨리 7세는 존 캐벗에게 신대륙을 살펴보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을 받은 존 캐벗은 신대륙 뉴펀들랜드 노바스코시아에 상륙했으나 영국내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다.

신대륙에 큰 관심을 보인 지도자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 그녀는 월터 로리경으로 하여금 신대륙을 살펴보고 오라고 하여 1585년 이래 두 번이나 아메리카를 원정한 월터 로리경은 자신이 답사한 지역을 처녀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리기 위해 ‘처녀의 땅’이라는 이름의 ‘버지니아’로 명명했다.

오늘날의 버지니아는 미국의 50개주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당시의 버지니아는 미국 동남부 지대의 평야지대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북부 산악지대를 뉴잉글랜드라고 했고 남부 평야지대를 버지니아라고 불렀다. 월터 로리경은 상당수의 영국인들을 버지니아에 남겨 놓고 돌아왔지만 몇 년 뒤에 와보니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식민지 개척방법으로 에스파니아는 왕명을 받은 총독과 군대를 보내 직접 통치하며 금은보화만 약탈해가는 방식이었는데 비해 영국은 주로 상인들이 무역회사를 통해 사람들을 식민지로 보내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들 무역회사가 보낸 영국인들은 1607년 버지니아에 도착하여 영국인 최초의 마을을 건설하고 당시의 영국왕인 제임스 1세를 기려 ‘제임스 타운’이라 했다.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굶주림과 말라리아로 인해 죽고 말았지만 2년 뒤인 1609년 제임스 타운에 500여 명의 정착민이 도착하여 영국에 팔수 있는 작물 농사에 매달려 정착에 성공했다.

이들 중에 존 롤프라는 사람이 인디언에게 담배 농사를 시작하여 제임스 타운 근처에서 생산된 담배가 높은 인기를 얻으며 수출이 잘되자 버지니아 지방에서 담배 농사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담배 농사라는 것이 일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에 노동력 부족현상이 나타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1619년 20명의 흑인 노예가 네델란드 배에 실려 옴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역사인 노예제도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영국에서 온 정착민들과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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