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 기사입력  2009/10/27 [16:37]
수성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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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일 편집위원장     © 주간시흥
태종 이방원은 1367년(고려 공민왕 16) 5월 16일 함경도 함흥에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이성계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이미 동북면의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성계의 가문은 누대에 걸쳐 동북면 지역에서 활약하던 무장집안으로 이성계 대에 이르러서는 그의 뛰어난 무술실력으로 중앙정계의 실력자로 부상했지만 집안 식구 중에는 변변한 문신이 없어 이성계는 아들 중에 훌륭한 문신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방원이 어릴 적부터 총명한 재능을 보이자 이성계는 이 다섯째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과거시험을 보도록 종용하여 15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험에 합격하였고 다음해인 16세인 1382년(고려 우왕 8)에는 대과에 합격하여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이방원이 과거에 합격하자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 이성계로 이 일로 인해 든든한 아버지와 자랑스러운 아들로 자리매김했다.
이방원은 어린 나이에 문과에 합격한 영특한 인물로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의 혼란을 틈타 역성혁명을 꿈꾸기 시작하여 고려 말의 혼란한 정치현실을 비판하던 지식인들을 끌어들여 이들 신진세력의 중심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정몽주를 살해하여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고려 말의 세력을 제거하여 마침내 역성혁명을 이루었지만 차기를 노리고 있던 자신을 제쳐두고 어린 막내 이복동생을 후계자로 지명하자 아버지와 한판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조선을 창업한 자신들의 무력화시키고 재상정치를 도입하려는 정도전 일파의 만행을 묵과할 수 없었기에 결국 군대를 일으켜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고 또한 자신의 세력팽창에 불만을 품은 형도 제거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킴으로써 아버지인 태조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왕위찬탈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한 태종을 잔인무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왕조의 창업과 안정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여 시대의 악역을 담당한 태종이야말로 창업에 이은 수성의 길로 들어서는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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