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박시흥은 두 아이(5살, 7살)의 아빠이자 여우같은 마누라 김연꽃(36세)의 영원한 머슴이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휴일을 포함해 5일간의 휴가를 얻었지만 세계적인 경기한파의 직격탄으로 예년에 비해 50% 삭감된 휴가비를 받았다.
헌데, 친구들 중에는 땡전 한 푼도 받지 못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아예 휴가조차도 반납한 녀석도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나 분명 마누라는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나를 쥐 잡듯이 잡을 것이다.
휴~ 토끼 같은 아이들은 아빠와 놀러갈 생각에 들떠 있을 터인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알뜰하게 휴가를 보낼 방법을 궁리해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올해는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해외로 나갈 여행자들이 대폭 감소되어 국내 휴양지는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고맙기까지 하다.
“나 비록 ‘짠돌이’라는 명찰을 다는 한이 있어도 이 한 몸 바쳐 우리 집의 완소 휴가를 지켜 낼 것이다”라고 큰소리치며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내 비장의 카드를 소개할까 한다.
1일차.모처럼 늦잠자고 일어났다. 낮 기온이 30도를 넘었는지 벌써부터 덥다. 입맛도 없는데 콩국수나 먹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은행단지에 있는 ‘상챠이(031-313-9993)’의 콩국수는 정말 환상인데 생각난 김에 서둘러 갔다. 넓은 홀에는 가족단위의 손님이 북적인다. 나와 마누라는 콩국수를 아이들은 자장면을 시켰다. 주문을 하자 주방장이 콩을 믹서에 넣고 갈기 시작하더니 검은깨와 땅콩을 넣고 또 간다.
잠시 후 나온 콩국수를 받아들자 마자 국물부터 마셔봤다. 고소한 국물에 수박과 얼음을 동동 띄워서 시원하기가 그만이다. 면발 또한 예술이다. 오랜경험을 가진 주방장은 수타로 면발을 뽑는데 자장면과 콩국수면은 굵기부터 다르다. 가늘고 쫄깃한 면발과 고소한 콩국수의 국물이 오이채의 향긋함과 함께 목으로 자꾸 넘어간다.
캬~시원해서 좋다.
이런 콩국수 한 그릇에 5천5백원이면 훌륭하지 않은가! 내가 알기론 다른 곳은 미리 갈아놓은 콩 국물을 쓰거나 콩 분말을 물에 개어 쓴다는데 말이다.
2일차.
아침부터 여우같은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으신다. 다른 집들은 물놀이를 갔는데 우리는 안가냐고 성화다. 이럴 땐 아이가 셋 인거 같은 착각이 든다.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 마누라는 나의 주인님이신데 물론 우리도 물놀이 가야지 내가 미리 찜해둔 곳이 있거든. 다름 아닌 안산 단원구청 옆에 설치된 야외 수영장‘워터월드(문의/1577-1006)’인데 우리아이들에게 딱이다. 입장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정확하게 1만원 이다. 20명 단체는 1인당 8천원이고, 연령별로 3단계로 나뉜 수영장에 미니보트장과 유아풀장 까지 세심하게 잘 갖춰져 있다. 넓은 주차장덕택에 주차걱정 없고, 타 수영장에 비해 면적 또한 엄청 넓다. 에어바운스로 만들어진 물미끄럼틀과 풀장에 띄워진 대형바나나 보트는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밤에는 수영장 주변에 화려하게 ‘루미나리에’로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볼거리도 있고, 무대 위에 공연도 펼쳐져 시원한 맥주도 마실 수 있어 금상첨화다.
3일차.
오늘은 한판 쉬고 싶다. 어제 물놀이의 후유증으로 온몸이 나른하다. 웬걸, 우리 집 토끼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쌩쌩하다. 단지 마누라만 저질 체력을 드러내고 누워계신다.
눈치를 보니 밥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 몸이 메뉴를 정하는 수밖에. 흠~ 여름철 더위 먹은 데는 보리밥이 좋다는데, 제대로 지어낸 찰 보리밥에 청국장과 각종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함께 쓱쓱 비벼 한입 넣으면 없던 힘도 불끈 솟는다는 그 유명한 ‘명동보리밥(031-497-9700)’이 오늘의 처방이다. 열 가지 각종 나물과 채소에 맑고 고소한 비지와 청국장이 한상가득 차려졌다. “주인님, 많이 드시고 힘 내십쇼.”하니 마누라가 눈을 흘긴다.
햐~ 난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마누라가 눈 흘길 때 왜 그리도 섹쉬하게 보이는지, 보리밥 얼른 먹고 간만에 물왕리로 가서 분위기나 잡아볼까. 오늘밤엔 토끼들도 일찍 재워야겠다.
4일차.
시간이 왜 이리 잘 가는 건지 회사에서 일 할 때는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집에서 놀면 겁나게 빨리 지나간다. 내일이면 휴가가 끝나니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오늘은 아이들을 데리고 물왕리 근처에 있는 ‘소풍가는날(031-484-7692)’로 하룻밤 캠핑을 가기로 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늘의 별도 세어보고 야외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야심차게 준비했다. 이곳의 이용료는 생각보다 저렴해서 캠핑도구만 있으면 환상적인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거기다 이곳의 음식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많아서 하루정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다. 간만에 아빠의 멋진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절대 놓칠 수 없지 않은가. 글구 밤엔 여우같은 마누라에게 아부하는 의미로 와인도 한잔 서비스 하면. 캬~ 난 아무래도 전생에 작업의 제왕 이었던 거 같다.
5일차.
알뜰하게 보낸 휴가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나름 어디든 가족과 함께 했으니 추억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비록 멀리 떠나진 않았지만, 나 박시흥은 대한민국 대표 남자다. 어려운 시기지만 아빠로서 머슴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낼부터 회사에 가려니 앞이 캄캄해 온다. 진짜 가기 싫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토끼 같은 우리 애들과 여우같은 마누라 얼굴만 보면 자동으로 가게 된다.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멋진 가장들이여! 힘내자 우리에겐 든든한 가족이 있다. 그리고 명심하자. 집 나가면 생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