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바이러스 트롯 가수 주연아

『오늘은 좋은날』 귀에 쏙! 가슴에 콕!

추연순 취재국장 | 기사입력 2018/09/06 [15:00]
추연순 취재국장 기사입력  2018/09/06 [15:00]
행복바이러스 트롯 가수 주연아
『오늘은 좋은날』 귀에 쏙! 가슴에 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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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시흥

 

오늘은 좋은날이라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매일 외치면 왠지 정말 세뇌된 하루처럼 만사 긍정적인 해피바이러스가 하루를 점령할 것 같다. 최근 오늘은 좋은날이라는 곡을 대표곡으로 삼아 날마다 기쁨은 두배! ~~~! 행복은 세배! ~~! 오늘은 기분 좋은날~~!’을 부르며 행복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주연아 가수를 만나보자 생각한 것은, 지난 6월 물왕예술제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나서 계속해서 귓가를 맴도는 구절이 있어서였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귀에 쏙! 가슴에 콕! 박히는 노래 가사 때문인지 기쁨은 두배~행복은 세배~~오늘은 기분좋은날~~ 부분을 몇날 몇일 아침에 옷 갈아입는 순간, 혹은 무심코 운전하면서 특정 구절을 후렴구처럼 반복적으로 흥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치 오랫동안 들어왔던 애창곡처럼 기쁨은 두배! ~~~! 행복은 세배! ~~! 오늘은 기분 좋은날~~!’ 구절을 익숙하게 흥얼거리며 정말로 그날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주연아 가수를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작은 카페에서 직접 만난 주연아씨는 TV속 출연 영상이나, 공연 동영상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대중가수 이전에,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똑순이 별명 갖고 식당도 하고, 의류도매업도 하는 여장부 주연아, 얼짱각도 쎌카를 찍어 어플 뽀샵하는 사랑스러움 가득 묻어나는 소녀 주연아, 맛깔나는 음식과 손수 무대의상을 제작하는 또다른 황금손 주연아, 늦깍이 가수로서 열정 가득한 도전적 삶을 개척하는 낭만적 동키호테 주연아를 한꺼풀 한꺼풀 양파처럼 보여주면서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본다.(편집자 주)

 

이전에 의류사업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늦깍기 가수로서 뒤늦게 가수의 꿈에 도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릴적 태평소를 다루던 아버지의 음악적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끼가 있어서였는지 어려서부터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거울을 보며 이야기하곤 했지요. 가수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은 갖지 않았어도 잠재적으로는 항상 가수가 되고 싶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노래에 대한 열망은 항상 있어서 마을 행사나 전국노래자랑 같은 크고 작은 노래무대만 있으면 남의옷 빌려입고 노래자랑을 나가곤 했으니까요.

20대에는 가족들 도와 수산시장에서 횟집 장사도 하고, 30대에 의류업을 시작해 20여년 해서 어느정도 돈을 벌게 되자 음반을 내고 노래를 해도 되겠다 싶었죠.

 

▲     © 주간시흥

 

늦깍이 가수임에도 데뷔 연차에 비하면 비교적 상당히 빠르게 공영방송 무대에 섰다고 생각되는데 200991143회 가요무대에 데뷔하고 약 10년 뭔가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초창기는 가수라고 느끼지는 못했고 이게 무슨 행운인가. 실은 아직도 가수라든가 스타의식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노래교실 가서 사람들이 나를 신비하게 봐주고,평범한 사람으로 가끔은 무대의상을 입었을 때 내가 가수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은 저보고 무명시절이 짧았다고 하지만 저도 노래를 하고 싶어 앨범을 낸 것으로 치면 벌써 7번째 냈어요. 첫앨범 낸 것이 40대 중반이니 15년 정도 되었죠. 동대문에서 장사하면서 계속 음반을 냈다고 봐야죠.

하긴 그때는 장사를 하고 있었고 노래를 하고 싶었을 뿐 가수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색할 때였던 것으로 치면 전업가수로 활동하고 나서 제가 비교적 빠르게 공영무대에 서긴 했네요.

라디오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해보는게 소원인 많은 무명가수들 입장에서 그간 가요무대를 시작으로 전국노래자랑, 여유만만, 6시 내고향, 아침마당 등 TV 프로그램에 나온 제 프로필이 부러움의 대상이고 보면 무명을 벗어난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제가 스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은 저는 아직도 내가 정말 주연아가 맞아? 조명숙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꼬집어 볼 때가 있을 정도로 가수나 스타의식을 떠나 아직 무명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영방송 데뷔 10년이 다가온다지만 무대에 설 때마다 울렁증은 똑같고, 그렇다고 날마다 공연의뢰가 들어올 만큼 자생력이 생긴것도 아니어서 아직도 여전히 소속사나 매니저 없이 독립투사처럼 뛰고 있어 가수나 스타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데뷔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다 생각하고 계속 열심히 노력해야죠.

 

대표곡이 나오게 된 사연과 신곡 발표 계획은 있으신지요?

 

처음 작곡가님들께 곡을 받을 때는 나도 드디어 내곡이 생기는구나 신기하고, 주는 곡을 그대로 감사히 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 맞는 곡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군요. 오늘은 좋은날세상만사두곡은 7080세대라면 누구나 한두 곡쯤은 들어 보았을 만큼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유명한 장경수 작사가께 받았는데 그분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요. 지인을 통해 장경수 작사가님 부인을 소개받고 찾아가 부탁했어요. 제 노래 CD를 들어보고 제 성격과 음색에 맞는 노래를 만들어 주십사 부탁해서 받는데 제 노래 시디를 듣고 김연자씨와 주현미씨의 중간 목소리라고 평하고 두 곡을 만들어 주셨어요. 대중에게 행복을 주는 긍정적이고 노래라고 생각되어서 드디어 내 노래를 찾았구나 싶어 두곡을 대표곡으로 삼고 있는데 다행히 많은분들이 사랑해주고 있어 기대가 큽니다. 신곡발표보다는 우선 오늘은 좋은날을 알리는 것에 주력하고 싶고, 다음에 신곡을 낸다면 국악이나 민요풍이 믹스된 퓨전트롯 곡을 부르고 싶어요.

 

그간 가수생활에 꽃길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기억나는 부분이나 감사할만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고자 동대문 의류업을 접고 전업가수 길로 들어섰을 때 아침 일찍부터 화장을 하고 노래 CD를 들고 무조건 방송국을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며 한번 들어만 봐달라. 라디오에 틀어달라. 무대에 세워달라 조르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이상한 여자 취급을 했지만, 밭에서 일하다가 초라한 모습으로도 가고, 수없이 가고 또 찾아가니 열심히 사는 것 보고 도와주시더군요.

감사한 분을 떠올리라면 잃어버린 30MC 하시던 KBS 이지연 아나운서가 동대문에서 의류업할 때 만난 인연으로 저를 그렇게 예뻐해 주셔서 라디오에 오늘은 좋은날을 많이 틀어주셨어요.

제게 용기를 준 인순이 선배님도 기억에 남네요. 16년도 가수 인순이 선배님께서 일산킨텍스 청소년예술제 대기실에서 저를 보고 소속사가 어디냐?’고 묻기에 소속사 없다 했더니 이런 수만명 관중 인파가 모이는 곳에 아무나 쉽게 오기 힘든데 소속사도 없이 이 자리까지 오다니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셔서 그 말이 힘들 때마다 더 노력해야지 하고 두고두고 힘이 되었어요.

 

▲     © 주간시흥

 

가수로서 특별히 팬들을 위해 신경쓰는 무대매너 같은 것이 있다면, 평소 무대의상을 직접 제작해 입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수로서 굳이 힘들게 제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가수니까 노래는 기본이지만 저는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직업상 화장을 해야 하기도 하지만 화장을 하지 않고는 바깥 외출도 가능하면 하지 않는답니다.

 

무대의상도 마찬가지로 제가 노래교실에 가면 수강생들이 오늘은 주연아가 무슨옷을 입고 오는지 궁금하다 말씀해주세요. 그분들이 잠시라도 저를 보는 순간 행복했으면 해요.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은 원단 고르는 일부터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죠. 하지만 왜 만드느냐고 한다면 제가 동대문에서 의상제작을 한 경험이 있고, 무대의상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만드는 쪽을 택하고 있어요. 이옷을 입고 서게 될 무대를 생각하며 새벽이 올때까지 바느질 하는 순수한 기쁨도 한몫을 하고요. 그래서 아직까지 직접 만든 무대의상이 20벌 정도 됩니다. 저는 가능하면 리허설일지라도 꼭 정장차림으로 하려고 노력한답니다.

 

가수 주연아가 아닌 인간 조명숙에 대해서 알고 싶은 팬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알려주신다면요?

 

2살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35세 때 혼자되신 엄마에게 효녀가 되고 싶었는지 20대 때 부모형제 도와 장화신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횟집하고, 충무로, 여의도 식당 할 때 힘들었지만 돈버는게 즐겁고 행복했어요(울컥 목이메임). 그런 계기로 엄마 요리 솜씨를 닮아 요리하는게 즐겁고 재미있었죠. 식당하면서 직원들이 속썩이면 똑순이 별명 들으며 내가 직접 주방에 들어가 요리했어요. 동대문 장사할 때 밤에는 일하고 아침이면 경동시장에서 채소를 가득 차에 실어서 담근 김치를 거래처에 돌리고 살았던 때문인지 장사가 잘 되었지요.

결혼 후 동대문에서 의류업을 시작하고서는 예식장에서 꼬마 아이들이 입고 입장하는 화동 옷을 만들어 팔았는데 직접 의상디자인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감각이 있었는지 20년을 운영했어요. 화장하지 않는 얼굴로 나다지지 않는 것은 팬들을 위한 주연아지만 어떤 막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장화신고 밭일도, 식당일도 당차게 해내는 조명숙도 정말 솔직하고 꾸밈없는 저 자신이기에 다른 사람이 아니랍니다.

! 그리고, 공주처럼 이렇게 표정 짓고 사진 찍는거 좋아합니다. 프로필 사진으로 쓰려고 시작한 쎌카놀이에 재미 붙여 혼자찍고 뽀샵해서 수천장 드롭박스에 저장해두는 것을 즐겨요.

 

트롯 가수는 전국이 무대라는데 활동영역에서 가수로서의 바램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문화 예술인을 유치하여 지역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는 화천의 이외수, 제주 이효리, 남해 박원숙 등이 있듯이 현 시장에 당선된 임병택 시장님의 공약 중 하나인 물왕저수지 명품호수 공원화 정책이 있더군요. 이와 관련해서 저 같은 지역 가수도 미력하나마 가진 재능을 기부해 시정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오늘은 좋은날 같은 노래를 개사해 제가 사는 지역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수 있다면 좋겠고, 전국 어디든 불러주면 달려가는 가수이겠지만 제 지역에서 사랑받는 가수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많이 예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주간시흥 추연순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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