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추웠던 2017년 한해가 지나가고 꽃피는 춘삼월이 돌아왔다. 해가 길어지면서 나무마다 겨울눈에 물이 올라가는 소리가 숲마다 고요한 정적을 깨트린다. 나무마다 풀마다 이제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려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가장 먼저 벌이 찾아가 꽃 잔치를 벌이는 나무가 있다. 꽃 색이 노랑에 녹색이 섞여 있고 모양도 두드러지지 않아 이게 꽃이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미처 꽃으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회양목은 벌이나 나비, 꽃등에, 파리 등 곤충의 눈에는 그저 한상 잘 차려진 잔치집이다. 먹을 것이 귀한 이 춘궁기에 곤충에겐 더 할 수 없이 고맙고 귀한 존재이다. 남 보다 빨리 서둘러 꽃을 피워내는 회양목의 전략은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단단한 회양목으로 얼레빗을 많이 만들어 썼다. 그러나 이 회양목 얼레빗은 호패가 생기면서 위기를 맞았는데 호패란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들이 모두 차고 다녀야 하는 일종의 주민등록증이라고 볼 수 있다. 생원이나 진사는 회양목으로 만든 호패를 차고 다녔는데 회양목이 자라는 속도가 워낙 느리고 얼레빗을 만드는 데 쓰이다 보니 호패를 만들 재료가 부족해져 다른 용도에 쓰는 것을 막고 심지어는 회양목을 공물로 관아에 바치는 회양목계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에서도 세월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조직이 치밀하고 균일해 도장을 만드는 나무로 많이 쓰여 도장나무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숲해설사 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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