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열정적 82세 시민운동가

시흥시발전위원회 이병주회장

주간시흥신문 | 기사입력 2008/08/22 [12:00]
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8/08/22 [12:00]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열정적 82세 시민운동가
시흥시발전위원회 이병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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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한번 집착하면 열정을 보이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시민운동 전개로 81세의 노익장 과시


▲     시흥시 발전위원회 이병주 회장


사회운동에는 나이가 아무런 문제 될 이유 없다. 

 이미 80세를 훌쩍 넘긴 이병주 회장은 나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늘도 시흥시 전철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위해 시흥시에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어깨띠를 두르며 서명지를 들고 찾아 나서고 있다.

시흥시에 전철 특히 ‘신안산선은 반드시 시흥시에 연결되어야 된다.’는 절대적 과제를 달성하기위해 시민이 할 일은 시민서명으로 시민들의 열망을 정부에 알리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여 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안산 IC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시키기 위해 도로공사와 전면전을 치렀으며 아직도 문제 해결을 위해 도로공사와 시흥시에 항의 하며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무조건 반대가 아닌 적절한 합의 속에 문제점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라며 “일부 시민단체가 무조건 반대라는 의식 속에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라며 시민단체의 역할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병주회장이 시흥시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시흥시 발전을 위해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시흥시가 승격되면서이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대부도를 안산으로 뺏긴 일이라며 그때의 일들을 회상하며 얼굴이 금새 붉어져 오르고 있다.


“하루 전까지 만해도 주민투표 결과가 시흥이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투표 전일 뒤집어 졌다.” 화가 나서 일부 폭행을 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는 이병주 회장은 시흥시 공직자들의 무능함에 다시 한번 한숨을 짓는다.

   
부유한 어린시절과 국가에 몸 바친 젊은 혈기 

노익장을 과시하며 시흥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는 이병주회장은 황해도 연백 출생이다. 매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병주회장은 인천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유학 경성공업중학교(현재의 서울공고로 그 당시 5년제 중고등학교의 과정)를 졸업 했다.  "인천은 나의 제2의 고향이다."라는 이 회장은 한 때 학창시절에는 불량학생으로 싸움꾼으로 통했다.

한때 정치깡패의 대부이던 김두환을 비롯해 그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었으며 한때 의정부에서 조직(?)의 우두머리로 생활한 경험도 가지고 있는 이병주회장은 “젊었을 때 인기가 많았다.”라고 멋쩍게 웃으며 지금과 옛날의 조직은 개념이 다르며 그때 깡패는 없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였다고 회상한다. 이어 한양공대에 입학하여 23살인 2학년에 재학 중 일 때 6·25를 맞게 되면서 더 이상의 학업은 중단되고 그해 11월 26일 지원 입대하게 됐다.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 시작했는데 소년시절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 왜놈들이 운영하는 해양소년단에서 극기훈련 및 바다수영 등의 훈련을 받아본 경험과 대학 재학생이며 체력이 좋아 군에서 특수병과로 차출되어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뒤 국방경비대(육군)소위로 임관되고 격전장 현장에 투입됐다.

“그 당시 소위는 적군의 목표물로 전사자가 매우 많아 하루살이라 하여 일반병도 쳐다보지 정도였다.”라는 이 회장은 왜관전투며, 오산전투, 삼팔선 전투 등에 참여하게 됐으며 이후 교육부대로 자리를 옮긴 후 군 생활을 마쳤다.

 암 진단으로 건강 찾으려다 시흥과의 인연 돼

인천에서 주거지로 생활을 하다 부천으로 옮겨 살았는데 70년 무렵 암 진단을 받고 병과 시름하게 됐는데 위염을 위암으로 오판하여 그때당시 청정지역이던 시흥군으로 약수터며 요양차 다니기 시작한 것이 시흥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

시흥군 신천3리 이장으로 10년을 재직하면서 지역의 일에 관여하게 됐으며 79년도에는 명진마을에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벌이는 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전원마을 가꾸는 일을 시작했다. 이때 주변에 대학교 친구 등 100여명이상의 배경(?)으로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한번하면 열정을 보여주는 이병주 회장은 명진마을이 전국에서 ‘전원마을 가꾸기 최우수 마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는 일을 만들어 냈다.

명진마을은 이때부터 3년간을 시범지역으로 전국 각지에서 사업을 벤치마킹하기위한 관람자들이 줄을 이었고 마을 주민들이 아에 문을 열어 놓고 다녀야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그때 일에는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이 회장은 이때 사업을 벌이면서 집행부 공무원들의 고집이나 권위의식 등으로 부실공사가 이어지고 각종 문제점 등을 파악하게 됐다.
 
시발위 결성 시민단체로의 움직임 시작

이때부터 시흥발전위원회를 발족하여 시흥의 발전을 위한 일들에 대한 감시와 자신의 역할을 찾아보기위해 눈을 돌렸다. 다양한 시흥시의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문제점 등을 파악하고 시흥시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시흥시가 주변에 남은 지역들이 모여 시가 되면서 시흥시는 주변에 도시와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대부도를 빼앗긴 일 등 안산시에 대해서는 많은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안산IC의 진출입노선 변경으로 시흥시 목감동지역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시흥시에서의 진출입이 매우 불편해져 주민서명운동을 비롯한 개선 활동에 역점을 두고 활동해왔다.

또 제3경인고속도로, 오이도 철강단지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며 주간시흥의 칼럼을 보고 시민단체로서의 신안산선의 시흥연결에 시발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주민서명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게 시작했다며 전철 유치의 제일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제가 남은 인생 무엇이 필요 하겠습니까. 오직 시흥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고 보람입니다.”라며 오늘도 신안산선의 시흥시 유치를 위해 시민들의 서명지를 정리하며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이병주 회장은 시흥의 중요한 역할을 맞아오는 피 끓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젊은이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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