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린다.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많은 하얀 꽃송이가 하늘 가득 팔랑거린다.
내 어릴 적 어머니는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올해는 풍년들겠네, 눈이 많이도 오시니.”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신 어머니는 여러 현상을 농사와 연결시키셨다. 하긴, 1950년대만 해도 내가 태어나 살던 영등포는 영등포역과 시장을 도심권으로 해서 자연단위 마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논과 밭, 야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 친정은 류관순 열사와 이웃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고, 전국으로 봐도 농촌인구가 절대다수였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왜 ‘오신다’ 라는 존댓말을 쓰시냐고 반문했더니,
“존댓말 쓰는 게 이상하니? 농사는 누가 짓는 건데?”
하고 되물으셨다.
“그거야 농부가 짓는 거지요?”
“정말 그럴까? 하늘이 비를 안내려주시거나, 반대로 비를 너무 많이 내려주신다면 어떻게 되겠니?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게 하신다면?”
어머니 말씀에 어린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하늘이 농사를 지어주시는 거라 존댓말을 붙여 드리는 거란다.”
인류는 진화를 거듭해서 찬란한 현대 문명을 이룩했다. 가장 두드러진 발명으로 인간의 두뇌와 유사한 인공지능 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다. 아주 평범한 행성인 지구의 재앙, 예컨대 태풍이나 지진, 폭우, 가뭄 등을 예측 제어하기는 700만년 전에 살던 원시조상이나 700만년 후인 지금 살고 있는 후손인 우리나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더구나 문명을 지향하는 사이에 예기치 못한 복병, 즉 각종 오염이나 지구 온난화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무뢰하게도 자연현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왔다. 보잘 것 없은 얼마간의 기술을 갖게 되었다고, 농사는 하늘이 아니라 인간이 짓는다는 그릇된 망상에 빠진 것이다.
적어도 자연에 대해서만큼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시대로 돌아가서 한없는 외경심으로 받들어야 하겠다. 예전처럼 모든 자연물, 자연현상에 존칭과 존댓말을 써 드리는 것이 말 그대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것이 문명의 발달로 생기는 우리의 고통을 상당부분 줄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아름다운 싹이 트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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