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 갑신정변 (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6/12/16 [14:22]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6/12/16 [14:22]
한국근대사 - 갑신정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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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거사 5일전 대궐로 들어가 고종과 독대하고 갑신정변의 계획을 밝히자 고종은 국가의 명운이 위급할 때 모든 조처를 경에게 맡기겠다.”라고 화답했다.

1882125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우정사가 소속되어 우편 등을 취급했고 1884422일 우정총국이 설립되어 홍영식이 총판에 임명되었다.

1884124일은 우정총국 건물이 완공되어 축하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정총국은 해외를 시찰하고 돌아온 홍영식의 건의로 근대식 우편사무를 취급하기 위해 1884년에 설치한 관청이었다.

개화파는 그날 밤 떠들썩한 분위기를 이용해 부근 민가에 불을 지르고 왕궁 안팎에 폭약을 터트리며 공포분위기를 조성 한 뒤 정변을 일으키기로 계획했다.

124일 저녁 6시 우정국 만찬장에는 18명의 국내외 요인들이 들러 앉았다. 최초의 계획이었던 안동 별궁 방화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기별에 정변 주동자들은 좌불안석이었지만 김옥균은 실패로 돌아간 별궁 방화 대신 민가에 불을 지르라고 지시하자 얼마 후 창밖으로 불길이 치솟고 포성이 잇따르자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가장 먼저 불길을 향해 달려가던 민영익은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다.

김옥균은 민영익의 사망 여부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고종이 있는 창덕궁으로 달려가 청군의 반격에 대응하기 쉬운 경우궁으로 임금을 모시기 위해 고종의 침실로 들어 가 우정국 사건을 간략히 전하고 경우궁으로 옮길 것을 건의하자 고종은 김옥균이 권하는 대로 경우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케조에가 이끄는 일본군이 경우궁 안팎을 포진한 가운데 임금을 위해 달려온 윤태준, 이조연, 한구직, 조영하, 민영목, 민태호 등 대신들이 칼을 맞고 쓰러졌다. 아무도 죽이지 말라는 고종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날 개화파의 칼날에 쓰러진 대신은 11명이나 되었다.

잔인한 날이 지난 다음날 새벽 개혁정권의 각료 명단이 발표되었다. 우의정 홍영식, 전후영사 좌포장 박영효, 좌우영사겸 대리 외무독판 겸 우포장 서광범, 호조참판 김옥균, 병조참판 겸 정령관 서재필, 도승지 박영교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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