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자리 첫번째 문화마당 ‘새 ․ 꽃 ․ 새 잎’

이철수 판화展, 시흥시민에게 찾아와

주간시흥신문 | 기사입력 2008/05/29 [11:01]
주간시흥신문 기사입력  2008/05/29 [11:01]
복음자리 첫번째 문화마당 ‘새 ․ 꽃 ․ 새 잎’
이철수 판화展, 시흥시민에게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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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싸인해 주고 있는 이철수 화백                 © 주간시흥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이사장 신명자)는 지역주민에게 가까운 곳에서 문화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지난 20일부터 4일간 이철수 화백의 판화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철수 화백의 작품 ‘새 · 꽃 ·  새 잎’을 포함해 총 38작품이 전시됐으며, 지난 20일에는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이철수 화백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사인을 받는 행사도 마련됐다. 

 

 

 
▣ 이철수 화백과 시흥시민과의 만남

▶ 이철수 화백은 작품소재를 어디서 얻나

제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눈만 돌리면 보이는 풍경과 생활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이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일이지만 인생이 담겨있다.
누군가와 함께 농사일을 하다보면 어느덧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 가 있고, 나 혼자 이야 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월급쟁이도 상사가 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어느덧 시간 이 흘러있고, 자기 자신은 가족이 지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 “종일 논에서 살았다. 우리는 갈수록 작아진다. 거머리처럼…나비처럼…”이라고 적힌 ‘일하는 날’ (2000作)이다.

▶ “그림은 감성덩어리다”, “판화로 시를 쓴다.”라는 평판에 대해…

“판화로 시를 쓴다.”라고 자신을(이철수 화백) 소개한 것은 외국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 이지, 한국 사람인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면 감성이란 무엇일까? 사물 ․ 세상 ․ 사람을 느껴서 아는 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시’에는 감성이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생산 공장을 믿지 못하겠다.”라는 말과 같이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도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목판화가로서 판화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사는 게 어둡지 않아 좋은 판화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다.

▶ 시흥과의 인연

시흥은 젊은 시절 나에게 “바른 길로 가라”고 길잡이를 해준 소중한 인연이 있는 곳이 다. ‘시흥’이란 정겨운 이름을 갖고 있는 만큼 삶에 대해서도 정겨웠으면 한다.
이렇게 작은자리 복지관에 와 보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기관이 멋지고 좋은 시설로 갖춰져 있어 매우 좋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전시회인 만큼 오후 내내 행복했다.

▶ 넘치도록 풍요로운 세상

또한 현대 사회는 먹을 것, 입을 것 등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이다. 하물며 버릴 것도 많아졌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사회는 “넘치도록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브레이크가 없다. 또한 우리는 “미모  ·  신장 ·  능력  ·  경제력 등 모든 것을 갖춰야 한다.”는 수많은 강박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것에 중독되어 있다. 그만큼 ‘감성회복’이 중요하다. 감성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감성 마케팅’, ‘감성경영’, ‘감성 서비스’ 등 감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감성’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찾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내려놓아라.”라고 해서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과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란 생각이 들 때 내가 한 말들이 기억날 것이다.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농사는 최악의 경우에도 밥은 굶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조금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게 만드는 ‘중독’에서 벗어나라.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 이철수 화백은

이철수 화백은 1954년 서울 출생으로 1981년 관훈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989년 함부르크 대학 초청 독일 순회展(베를린, 함부르크, 보쿰, 프랑크푸르트, 슈르트가르트)과 스위스展 (취리히, 바젤)을 비롯해 수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그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제천 외곽 농촌에 정착해서 아내와 함께 판화를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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