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 없이 사는 삶,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라면 많이들 스님들의 삶을 떠올릴 것이다. 그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처음엔 나도 출가만 하면 내가 가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에 가서 걸림 없이 살 수 있는 줄로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험도 없을 줄 알았는데, 공부도 안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관계도 단순할 줄로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지켜야할 규칙은 왜 그리도 많은지... 그래서 생각했다. 의무는 충실히 하고 휴가를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 두 가지를 가장 잘 누리며 살았던 시절이 광명시 금강정사에서 8년의 삶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사찰의 일정에 나를 맞춰 살았다. 금요일이 나의 공식적인 휴일이었지만 그도 잘 지켜지지 않았으나 불만은 없었다. 휴가를 다녀온 멋진 추억이 있고 또 휴가를 갈테니까. 절집 일도 사람 일이라 갈등도 있고 오해도 있고 불편한 마음이 있기는 매 한가지다. 그 때는 휴가가 답이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 시골을 지나다가 길을 물으면 “저기, 해 뜨는 쪽으로 가면 나와요.” 땅끝마을 할매의 대답이 그대로 싯구다. 며칠 묵고 떠나오는 동강의 어느 집에서는 “그저 앞서가려 하지 말고 항시 양보하고 운전해요.” 하시며 막내딸 보내는 마음으로 할배가 배웅을 하신다. 이렇듯 소소하고 행복한 추억들이 일상을 살아내는데 분명 큰 힘을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왜 일하면서는 행복하지 않은지. 일상을 여행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는 없는지...’
일을 같이 하는 관계에서는 상대를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저 사람은 전에 그렇게 했어 그러니 또 그렇게 할거야. 흔히 하는 착각이고 실수다. 여행지에서는 어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지금 바로 내 앞에 보이는 모습만 본다. 그래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듯이 어쩌면 그도 어젯밤 19금 음료를 마주하고 깊은 고민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기억속의 상대를 고집하지 않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새로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린 함께 여행 중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일상은 여행과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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