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 기해박해 - (1)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6/03/04 [18:02]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6/03/04 [18:02]
한국근대사 - 기해박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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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시흥             편집위원장 김용일

 1801년(순조 1)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하는 경주 김씨 노론 벽파는 먼저 이가환, 정약용 등 남인세력을 정계에서 물리치기 위해 사학을 물리친다는 구실아래 천주교도들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탄압을 해 남인세력을 축출했다.


이들은 또 같은 노론이지만 그들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1802년 시파의 군사적, 경제적 기반이던 장용영을 혁파하여 정치적 힘을 약화시키고 정조가 살아 있을 때 정혼한 순조와 김조순의 딸과의 국혼을 저지하여 안동김씨 세력을 제거하려 했다.


그로나 김조순은 정조의 부탁을 정치적인 명분으로 삼고 반남 박씨와 연대하여 1802년 자신의 딸이 왕비로 정식 간택되게 했다.


1803년 12월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자 경주 김씨와 이를 중심으로 한 벽파의 정치세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그 대신 김조순을 중심으로 하는 시파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세도(世道)란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길을 뜻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세도정치(世道政治)는 신하가 강력한 권세를 잡고 온갖 정사를 좌우하던 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세도의 시작은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홍국영의 보호를 받아 여러 번의 위기를 모면하고 왕위에 오르자 홍국영을 대우하여 정권을 맡겼던 데서 비롯되었다. 홍국영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세도를 부렸다.


그러나 실질적인 세도정치는 순조 이후부터 나타났다. 반남 박씨 박종경과 안동 김씨 김조순과 풍양 조씨 조만영이 대표적인 세도가였다. 이들은 무려 60년간 세도를 부린 정치세력으로 핵심인물은 김조순, 김좌근, 김문근, 김병기였다.


효명세자는 11살이 되던 해 3월에 성인식을 치르고 같은 달 10월에 조엄의 손녀요 조만영의 딸인 풍양 조씨와 결혼했다.


1827년(순조 27) 2월부터 3년 3개월 동안 대리청정을 했는데 순조는 27년간 보위에 있었으나 장인 김조순이 중심이 된 안동 김씨의 세도에 싫증을 내 세자의 처가인 풍양 조씨를 정계에 등용시키기로 마음먹고 안동 김씨 세력을 꺾기 위해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다.


세자는 대리청정에 너무 지친 탓인지 1830년 윤 4월 22일 병의 증세가 나타나 피를 토하더니 5월 6일 아침 6시에 22살을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효명세자의 죽음으로 풍양 조씨 세력이 좌절되는 것 같았지만 순조가 조인영에게 세손(헌종)을 부탁함으로써 1834년 헌종이 즉위하자 풍양 조씨 세력이 다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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