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 프롤로그 - (6) 중종은 모두 세 명의 부인을 두었다. 조강지처인 단경왕후 신씨는 중전에 책봉된 지 7일 만에 폐비되었고 제1계비인 장경왕후 윤씨는 윤여필의 딸로 인종을 낳았고 제2계비인 문정왕후 윤씨는 윤자임의 딸로 명종을 낳았다. 1520년(중종 15) 원자 호는 중종의 기대와 백관의 경하를 한 몸에 받으면서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런데 1534년 제2계비 문정왕후가 경원대군(명종)을 낳음으로 예기치 않던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세자를 옹호하는 세자의 외숙 윤임과 유관, 유인숙은 대윤으로 경원대군을 지지하는 윤원로, 윤원형. 윤안임 등은 소윤으로 분류되었다. 투쟁의 방향은 세자 자리를 탈취하려는 소윤의 도전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대윤의 대응으로 이루어졌다. 일단은 세자가 인종으로 등극하여 대윤의 승리로 끝나는듯했으나 인종은 나이 30이 넘도록 후사가 없었고 즉위한 해 6월 갑작스러운 병으로 누워 7월 초하루에 승하하면서 왕위를 동생인 경원대군에게 전위를 명하면서 대윤의 세상은 가고 소윤의 세상이 오고 있었다. 한동안 전횡을 일삼던 소윤 일당을 누르고 선정을 펼치려던 명종은 34세의 나이로 후사도 정해놓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567년 6월 28일 평소에 자주 앓았던 명종이 갑자기 위독해졌다. 이준경 등이 엎드려 후사의 결정을 재촉하자 말없이 한쪽 병풍을 가리켰다. 이준경은 임금의 뜻이 내전에 물으라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이 일을 중전에게 여쭈니 중전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으로 정하라하여 대통계승의 전문을 쓰고 나자 명종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선왕조에서 왕의 적자, 적손이 아닌 사람으로 방계에서 처음으로 왕위를 계승한 사람이 바로 하성군 즉 선조였다. 그는 중종의 서자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 대통을 잇게 되었다. 선조의 즉위 이후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사림들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하자 명종 때에 권세를 휘두르던 권신인 윤씨들이 대거 몰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훈구세력과 권신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견제세력을 잃은 정계는 스스로 분열하여 붕당을 이루게 되었다. 김용일 주간시흥신문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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