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2세는 비인에서 출생해 비인에서 타계한 작곡가, 지휘자겸 바이올린주자이다. 아버지는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이며. 동생중에는 요제프와 에두아르트 역시 왈츠 음악의 명인들이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험난한 음악가의 길을 택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해 요한에게 은행가가 되는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몰래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웠다. 그는 15명으로 편성된 자신의 악단을 결성, 최초의 무도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그의 악단은 아버지가 이끄는 악단과 경쟁하는 입장에 놓였으나 부자간에 화해가 이루어 졌다. 아버지가 타계하자 아버지의 악단을 흡수 통합해 명실공히 왈츠의 정상을 정복하는데 성공 했다. 그 후 유럽각지로 활발히 연주여행을 하던 그는 누적된 과로로 정신성 질환을 앓게 되어 악단지휘를 두 동생들과 교대로 했다. 그들의 연주여행 범위는 러시아와 미국 등지로 까지 넓혀졌으며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궁정무도회 지휘를 맡았다. 요한 슈트라우스2세는 왈츠 170곡, 폴카 120곡 등을 포함해 모두 500곡 이상의 작품을 썼다. 그의 왈츠곡들은 단순한 춤곡의 범주를 벗어난 감미로운 리듬과 선율, 우수한 관현악으로 브람스같은 당대의 제1금 음악도인 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74때 그는 폐렴으로 타계했다. 아버지 요한슈트라우스가 피아노 앞에서 왈츠를 작곡 하고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그의 아들 요한슈트라우스2세가 라틴어 숙제로 시저에 관한 이야기를 번역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작곡 도중 화음 연결이 잘 안되서 몹시 애를 먹었고, 아들은 라틴어 번역이 잘 안돼 낑낑거렸다. 아들이 벌떡 일어나 아버지 곁으로 다가 가더니 말했다. “아빠 제가 해 볼까요?” 아들이 피아노 앞에 앉아 화음 몇가지를 두드리자 전조가 기가 막히게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몹시 감탄 하면서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아들은 계속 화음을 두드렸다. 문들 옆이 조용하기에 돌아보니 아버지도 아들에게 질세라 열심히 시저 이야기를 번역 하고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름이 같은데다 두 사람 다 왈츠 음악에 공이 컷기에 아버지 요한슈트라 1세를 “왈츠의 아버지” 요한슈트라2세를 “왈츠의 왕” 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아무리 타인들이 붙인 애칭이라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탓 할 것도 없겠으나 아들을 왕 이라 호칭 하는 것은 아버지 입장에서 조금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왈츠곡을 대부분 누군가에게 헌정했지만 <황제 왈츠>는 아무에게도 헌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바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선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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