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제32화 반객위주(反客爲主)-(3)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5/02/16 [14:43]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5/02/1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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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반객위주(反客爲主)-(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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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비록 자신이 항복을 받아낸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진나라는 항우의 손에 들어왔기에 이긴 자의 너그러움으로 어진 다스림을 베풀 수 있었다, 하지만 진나라의 주력군과 싸우면서 악전고투를 거듭해오는 동안에 거칠어져 관용과는 멀어지고 말아 자신이 거느린 장졸들에게 약탈을 허용함으로써 시황제나 다름없이 백성들을 쥐어짜고 죽이게 된 것이다.

며칠 동안 약탈을 끝낸 항우는 그동안 모은 재물과 여자들을 데리고 함양을 떠나갔다. 새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기대하고 있던 진나라 백성들은 항우에 크게 실망했다. 유방의 너그러운 다스림을 경험한지 오래지 않아 항우의 약탈과 파괴가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회왕을 의제로 올려 세운 항우는 이어 제후와 장상들에게 천하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이로써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시행한 군현제는 10여년 만에 폐지되고 천하는 다시 봉건제로 돌아가게 된다.

먼저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 되어 양나라, 초나라 땅 아홉군 가장 기름진 땅을 봉지로 삼아 팽성에 도읍하기로 하고 유방에게는 파(지금의 중경을 중심으로 하는 사천성 동부 일대), 촉(성도를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사천성 중서부 일대)땅을 주어 한 왕에 봉한 다음 멀리 쫓아버렸다.

한 왕 유방의 군사는 10만이 넘었지만 항우는 유방이 큰 세력을 거느리는 것이 못미더워 3만의 군사만 데리고 가게 했다. 유방이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자 유방을 흠모하는 자들이 몰래 빠져나와 그 수가 3만이 넘었다.

죽을 고비를 신하를 자처하며 비굴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살아남은 뒤 파촉 땅으로 가 절치부심하던 유방은 힘을 길러 마침내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하고 한제국을 건설했다. 한나라는 우리나라와도 관계가 있는 나라로 학교 다닐 때 역사에서 배운 한사군을 설치한 나라이기도 하며 파촉 땅은 후일 한나라가 무너지고 삼국 시대일 때 유비, 관우, 장비가 촉나라를 세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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