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김용일
장량과 함께 유방을 만나 항우가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올 거라는 말을 하고 대책을 논의한 다음 항우에게로 돌아와 장량을 만나러 갔던 일을 털어 놓고 다음날 유방이 사죄하러 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유방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항우는 쉽게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범증이 달려와 다시 한 번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역설하자 항우도 범증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유방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 했다.
다음 날 유방은 아침 일찍 믿을 만한 장졸 백여 기만 이끌고 항우를 만나려고 떠나 항우의 군막에 이르자 항우를 호위하는 군사들이 번쾌를 비롯한 장졸들을 모두 군막 밖에 세워두고 유방과 장량만 들어가게 했다.
유방이 항우 앞에 이르자 주변의 이목을 아랑곳하지 않고 넙죽 엎드려 절을 한 다음 비굴해 보일만큼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타고난 무인인 항우는 유공의 솔직한 복종의사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눈물을 흘리며 신하임을 자처하자 항우의 마음은 이미 풀리고 말아 유방을 잔칫상을 벌여둔 곳으로 이끌었다.
유방의 몇 마디에 풀려버린 항우의 표정을 보던 범증은 탄식을 하며 오늘 유방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술잔을 주고받는 항우와 유방은 어느새 유쾌한 주객으로 돌아갔다. 유방과 마주 앉은 범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탔다. 항우의 비위를 맞추는 유방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자신의 주군 항우에게 큰 걸림돌이 되리라 여겨 항우에게 유방을 죽일 것을 몇 번이나 암시했지만 제 흥에 겨운 항우는 번번이 제지하며 유방에게 손을 쓰려 하지 않았다.
항우의 손을 빌려 유방을 죽이기를 단념한 범증은 슬그머니 술자리를 빠져나와 항우의 종제인 항장을 불러 안으로 들어가 칼춤을 추다가 유방을 죽이라고 했다.
항우의 허락을 얻은 항장은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장량은 애가 탔다. 술자리가 시작될 때부터 표정이 심상치 않았던 범증이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뒤 일어난 일인데다 항장의 칼춤에는 싸늘한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기색을 눈치 챈 항백이 검무란 짝이 있어야 제멋이라며 칼을 빼들고 어울리며 항장의 칼이 유방에게로 향하지 않게 막아섰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유방은 밖으로 나와 장졸들을 이끌고 도망쳐 버렸다.
이 잔치가 있고 며칠 뒤 항우는 드디어 군사를 몰아 함양으로 들어갔다. 이미 유방에게 항복했던 함양은 아무 저항 없이 항우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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