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김용일
나무에 꽃을 피게 한다는 뜻으로 위장이나 허풍도 전술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장비가 뛰어난 맹장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그가 지용을 겸비했다는 것은 모두들 잘 모른다. 유비는 군사를 일으킨 초기, 조조와의 교전에서 여러 차례 패하게 된다. 유표가 죽은 후, 유비는 형주에 있었는데 세력이 아주 미미했다. 이 때,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남하해 완성(宛城)에 이르자, 유비는 황망히 형주의 군민을 이끌고 강릉(江陵)으로 퇴각했다. 같이 철퇴하는 백성들이 워낙 많다 보니 철퇴하는 속도도 무척 느렸다.
조조군이 당양(當陽)까지 추격해 와, 유비 군과 일전을 벌였는데 유비가 패퇴하여, 심지어 자신의 처자와 아들도 혼란 중에 흩어지게 되었다. 유비는 허둥지둥 도망치기 바빠, 장비에게 뒤를 막고 추격병을 저지하도록 명령했다.
장비는 불과 2~30 기의 기병만 있었는데 어떻게 조조의 대군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장비는 위험에 처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머리를 굴려 마음속에 한 가지 계책을 세웠다. 그는 거느리고 있던 기병들에게 모두 숲속으로 들어 가 나무 가지를 꺾어 말 꼬리에 묶게 한 후 숲속을 달리게 했다. 장비는 혼자서 흑마를 타고서 장팔사모를 비껴들고는 위풍당당하게 장판교(長板橋) 위에 서서 추격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격병들이 도착해, 장비 혼자서 말을 타고 창을 비껴 든 채로 다리 위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또한, 다리 동편 숲속에는 먼지가 휘날리고 있었다. 숲속에 틀림없이 복병이 있다고 생각한 조조의 추격병은 바로 그 자리에 멈추었다. 장비는 2~30 기의 기병만으로써 추격하는 조조군을 저지해, 유비와 형주 군민이 무사히 철퇴하도록 하였으니 이가 바로 “수상개화”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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