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흥=김세은 기자]
2024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지난 6일 정왕평생학습관에서 제12회 시흥여성인권영화제 <맞은바라기>가 개최됐다.
행사는 안수진 시흥여성의전화 활동가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약 15분간 시흥여성의전화가 제작한 영화 <빛과 그림자>가 상영됐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시흥시민 6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낮과 밤이 다른 시흥의 모습을 조명한다. 낮에는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로 보이지만, 밤이 되면 화려하고 현란한 밤문화가 성행하는 장소로 변모하는 시흥의 이면을 비추며, 유흥주점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성상품화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시흥여성의전화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성적으로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또한, 시흥시민 6인의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한다.
시흥여성의전화는 이번 영화제에서 <빛과 그림자> 상영으로 시흥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성상품화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실을 고발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다음으로 상영된 독립영화 ‘정순’은 불법 촬영 피해자를 다룬 이야기다. 50대 여성 정순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새로 들어온 ‘영수’와 눈이 맞아 연애를 시작한다. 영수는 무릎을 다쳐 공장에서 힘을 쓰는 일 대신 여성들과 함께 일하며, 그런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공장 내에서 소문이 도는 것 같으니 조심하자는 정순에게 자신이 부끄러운지 불평하며, 남성 무리에 끼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자신의 초라한 일상을 불만스러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공장관리자에게 무시당한 영수는 그에게 속옷 차림으로 춤추며 노래하는 정순의 영상을 공유하고, 그 동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정순의 일상을 망가뜨린다. 사건 이후 영수는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정순을 찾아와 정순을 찾아와 동정을 구하고, 정순은 합의하고 사건을 일단락한다.
영화 상영 이후, <여성의 몸은 어떻게 소비되는가?>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가 진행됐다. 사회는 이동화 시흥여성의전화 대표가 맡았으며, 게스트로는 유화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강명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상담연계 팀장이 참석했다. 토크콘서트는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영화 내용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몸이 소비되는 실태에 대한 깊은 논의를 나눴다. 토크콘서트의 질문과 답변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 (왼쪽부터) 이동화 대표, 유화정 연구위원, 최선혜 사무처장, 강명숙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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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순’은 하급 계급이라고 볼 수 있는 중년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이다. ‘나이듦’에 대해서.
유:유독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있다. 정순이 고통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단단함이 나이가 주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나이 든다는 것은,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다.
2. 여성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어떻게 노출이 되는지 원인, 실태, 현황에 대해
최: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의 몸을 물건으로 보는 태도에 있다. 여성에 대한 성매매와 성착취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기술변화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로 발전한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연령층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디지털 너머 실제 피해자가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일종의 놀이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비단 기술의 발전으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여성의 몸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에 대한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강: 실태를 말해보자면 2018년 기준 지금까지 순수피해자가 약 3만 명이다. 피해대상은 10-20대가 많긴 하지만, 갈수록 피해연령을 특정하기 어렵다.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있는 상황에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최신식의 방법으로 여성에 대한 성범죄 피해가 늘어간다.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상의 유포뿐만이 아니라 나의 정보가 유출되고, 삶 전체가 유포되는 것이다.
3. 남성사회에서 밀려난 ‘영수’ 캐릭터가 특이하다. 남성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순을 도구로 이용하고, 경찰 조사 후 정순을 찾아와서는 ‘우리 둘 다 지금 상황을 이겨내야 하지 않느냐.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빨간 줄 그어지면 어디 가서 일하기도 어렵다’는 사과가 아닌 자기변명을 한다. 영수는 가해자로 명명되지만 일상을 유지한다. 어떻게 보셨는지.
유: 치졸하고 비겁한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이다. 정순을 찾아온 시기가 경찰조사가 일어난 뒤인데, 사과하러 왔다는 말 뒤에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자기변명과 동정심을 유발할 뿐이다. 가해자의 비겁함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최:우리에게 익숙한 악인의 모습은 피해자를 윽박지르고, 협박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사실 현장에서 만나는 가해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가해자는 여성의 심리와 관계를 이용해 영상을 촬영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유포하고 활용한다. 가해자가 철저히 자기의 실리대로 움직이며 사과 또한 자신의 죄책감과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진다. 피해자의 상황을 일절 고려하지 않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는 식이다. 이런 것들을 사회적으로 방어하고 차단하는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
3-1. ‘친밀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50대 피해자라는 것에 대한 경찰의 떨떠름한 반응.
최:40대 이상의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이라고 하면 대개 연인이 아닌 혼인관계에서 일어났다고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20대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40대 비율이 높은 편이다. 사실 연령에 상관없이 이런 관계 맺음이 있기 때문에 전 연령대에서 일어나지만 사회통념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담하면서 많이 만나게 되는 경우는 외도 관계이다. 외도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은 자신의 외도 사실이 드러나고 도덕적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인생이 다르듯이 관계 내의 폭력은 각각의 모습으로 일어나며 전형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다.
4. 유포가 많이 됐을 경우 삭제조치가 쉽지 않다는 경찰의 말. 하루아침에 일상을 잃은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강:영상물만 삭제되면 괜찮다는 피해자분들을 많이 만난다.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 지원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들은 법적 처벌을 피해 해외 서버를 사용해 불법 촬영 영상물을 유포한다. 영상을 접한 주변인들은 영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는 등 피해자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해진다.
5. 영화에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정순의 상황과 고통에 집중한 점, 가해자를 한 명으로 특정하지 않은 점, 마지막 운전에 대한 도전의 시사점
유:정순이 고통의 시간을 뚫고 나와 공장으로 직행해 영상의 모습을 재현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상을 공유한 가해자들이 춤추는 정순을 보며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성적 수치심’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느껴야 한다. ‘수치심’이란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느끼는 것인데, 오히려 그 용어로 인해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운전에 대한 장면은 딸 유진이 운전하는 차에 탄 정순, 영수와 운전하는 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정순의 모습이다. 영화 끝부분에서 운전면허시험을 준비하고, 딸에게 연수를 받는 정순의 모습을 통해 주체적으로 나아가며 살겠다는 정순의 의지를 보여준다. 운전은 공간감과 거리감, 세상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주며 정순이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리라 예상한다.
최: 고통 중에도 빨래와 설거지 등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용기가 보였다. 또한, 노숙자에게 자신의 옷을 준다든지 딸의 상처를 먼저 발견한다든지 가해자의 처지를 연민하는 정순을 보면서 정순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딸 유진과의 다툼 장면이 인상 깊다. 유진이 자신에게 말도 없이 합의하고 사건을 종결시킨 정순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치자 정순이 ‘내 인생’이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피해자 지원 시 가장 크게 범할 수 있는 실수가 이것이다. 피해자는 무력하고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섣부른 판단을 할 수가 있지만, 인생의 가장 전문가는 본인이다. 그런 면에서 정순은 자신의 인생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6. 성착취와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에는 어떤 게 있을까.
강:불법 촬영 영상물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요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불법 촬영 영상물에 대한 강력처벌이 시행돼야 한다. 한 번 유포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사전조치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찍지 않고 보지 않는다는 대중문화 인식을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최:법 일부가 개편되기는 했지만, 성범죄 폭력의 근본 본질을 봐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는 익숙함에 무관심하지 말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관심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 일상 속에서의 실천이 중요하다. 집회에 참여하거나 실천이 어렵다면 관심이나 후원으로 지지할 수 있다.
이번 토크콘서트를 통해 불법 촬영과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범죄가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임을 지적하며, 해결을 위해 법적 제도 개선뿐만 아니라 대중의 인식 변화와 실천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지원하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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