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서태후 (6)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2/04/06 [17:27]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2/04/06 [17:27]
중국여인열전 - 서태후 (6)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편집위원장 김용일
    ©주간시흥

 
청나라는 만주족이 건립한 나라였고 만주족은 8기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 8기 제도는 상3기, 하5기로 나누는데 서태후의 가정은 상3기에 속하는 귀족집안이었다.

귀족집안이었지만 어렸을 때는 갖은 고생을 하다가 17살에 황궁에 들어가자 부귀영화를 누릴 것을 고대하며 일년 여를 노력한 끝에 가까스로 황제의 내시에게 부탁하여 황제가 산책을 할 때 준비했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다. 노래를 원래 잘 부르던 그녀가 자신의 장기로 황제에게 총애를 받을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었다.

산책을 하던 황제가 은은한 노래 소리를 따라 가보니 이쁘장하게 생긴 여인이 사색에 잠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때부터 황제는 서태후를 알기 시작했고 왕자를 출산 할 수 있었다. 황궁 안에는 궁녀나 황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황제의 눈에 들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황제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했고 드디어 황자를 낳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함풍황제 생전에 서태후는 그렇게 총애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1860년 영국군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열하로 도망친 함풍황제가 그곳에서 죽는 바람에 그녀가 낳은 아들이 유일했기에 동치황제가 되면서 그녀는 황태후가 되었다. 황제의 오른쪽에 살았던 황후를 동태후라 부르게 되었고 왼쪽에 살았던 동치황제의 생모를 서태후라 부르게 되었다.

동태후가 제1황후, 서태후가 제2황후였지만 동태후는 동치제의 양모였고 서태후는 생모였다. 이때 즉위한 동치제는 나이가 겨우 여섯 살이어서 두 태후가 수렴청정하기 시작했지만 서태후는 야심가여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동태후는 관심이 없었다.

인자하고 사리에 밝은 동태후는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았지만 서태후는 그렇지 못하자 동태후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6살에 즉위한 동치제가 17살이 되면서 결혼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두 태후의 수렴청정을 끝내기로 했지만 서태후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후로도 서태후는 무슨 일이나 보고 받기를 원했고 그러다보니 아들인 동치제는 자신의 주관대로 결정을 하지 못하다보니 모자간에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자 동치제는 생모인 서태후보다는 동태후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황후를 택할 때도 양모인 동태후가 좋아하는 여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서태후는 동태후 때문에 자신과 친아들 사이의 관계도 멀어진다고 생각하고 동태후를 제거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시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