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서태후 (4)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2/03/19 [14:56]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2/03/19 [14:56]
중국여인열전 - 서태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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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장 김용일© 주간시흥

 
영불연합군은 10월 13일 북경의 안정문을 점령했다. 그전에 10월 6일부터 9일까지 영불연합군은 원명원을 철저히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원명원은 옹정제가 황자시절 아버지 강희제로부터 하사받은 폐원에 정원을 조성한 곳으로 건륭연간에는 장춘원과 기춘원(후일 만춘원으로 개명)이 증축되었다.

원명원은 이 세 정원의 총칭으로 원명원만 해도 동서로 1.6km, 남북으로 1.3km나 되는 거대한 정원이었다. 장춘원에는 이국 취미가 있어 위구르족 여자를 사랑하기도 했던 건륭제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유럽풍의 해안당이라는 건물을 지었고 분수를 만들기도 했다.

건륭 이후의 황제들은 자금성을 공식장소로 사용하고 원명원은 사생활을 즐기는 장소로 삼은 곳으로써 여기에는 황제의 수집품이 소장되어 있어 영불 연합군은 이 원명원을 철저히 약탈하고 한 가지도 남기지 않았으며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모조리 두들겨 부수었고 그리고 나서도 불을 질러 약탈의 흔적을 없앴다.

영불연합군의 입성이 늦어진 것은 약탈에 정신이 빠져 전쟁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러시아 공사 에그나치프의 조정에 의해 영불과 청국 사이에 북경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북경조약의 내용은 천진조약을 추인하는 것이었지만 천진항의 개항과 홍콩의 대안에 있는 구룡을 영국에 할양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영불 양국에 각각 전쟁배상금 800만 냥을 지불해야 했다.

러시아와 미국은 영불연합군에 편승하여 어부지리 성과를 얻어 1858년 6월 13일 미국은 천진조약과 거의 같은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고 이보다 16일 전에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는 ‘애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애흔 조약에 의해 청국은 길림성 관할이던 흑룡강 북쪽 땅을 러시아에게 할양했다. 또한 공동 관리하기로 한 우수리강 오른쪽의 넒은 땅도 러시아령으로 편입해버렸다. 해삼위라고 부르는 이 고장은 북경조약이 체결된 해에 이미 러시아의 제1차 이민이 들어와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1861년 1월에는 북경의 총리각국 사무아문이 창설되었는데 이것은 지금의 외무부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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