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인열전 - 서태후 (2)

주간시흥 | 기사입력 2012/03/07 [18:54]
주간시흥 기사입력  2012/03/07 [18:54]
중국여인열전 - 서태후 (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편집위원장 김용일                           © 주간시흥
 
1858년 4월 이들 함대는 백하구에 도달했다. 그리고 북경 조정에 대해 교섭에 임할 전권대사를 파견할 것을 요구하고 만약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단호한 행동을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청조 정부는 광동과 복건에서 추가로 두 개의 항구를 개방하고 세액도 절감하겠으니 물러가라고 했지만 영불 양국의 전권대사는 이 제안을 무시하고 백하를 지나 천진으로 나갈테니 대고 포대를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청국이 대고포대를 인도하지 않자 2시간에 걸친 공방전 끝에 대고포대를 함락시켰다.

포대를 함락시킨 뒤 함대는 백하를 거슬러 올라가 5월 30일 천진에 도착했다. 그러자 청조도 할 수 없이 대학사인 계량과 이부상서 화사납을 흠차대신으로 파견하여 6월 4일 천진성 밖에 있는 해광사에서 영국의 전권대사 엘긴과 프랑스의 그로스 대사와 회견했다.

영국측은 다음의 7개항을 요구했다.
1. 사신을 북경에 상주 시킬 것.
2. 원정군의 비용 및 광주 양관 방화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것.
3. 중국 내륙의 통상, 여행, 장강의 통상을 개방할 것.
4. 기독교 선교사. 신도의 보호, 포교, 신교를 금지하지 않을 것을 서약할 것.
5. 세율표 개정을 위한 위원을 임명 할 것.
6. 해적진압을 위한 협력과 원조를 할 것.
7. 공문서에 영문을 채택하고 조약은 영문을 정식문서로 인정 할 것.

흠차대신이 영불을 상대로 담판하고 있는 동안 러시아와 미국은 1조를 취소하고 일찌감치 조약에 조인했으며 청조 정부는 영불의 모든 요구를 수락하고 조약을 맺어 영국이 1858년 6월 26일 그리고 프랑스는 그 다음날 조인했다.

이 천진조약의 5항에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어 이 세율표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양약이라는 품명이 새로 추가되었는데 이 양약은 사실 아편을 가리키는 말로 영국은 이 천진조약으로 사실상 아편을 공인시킬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간시흥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